창녕 화왕산, 억새 사이 진분홍 진달래·푸른 강물 옆 노란 유채 꽃대궐

경남 창녕은 해마다 이맘때면 다양한 색상을 품는다. 진분홍 꽃망울을 터뜨린 진달래는 화왕산(火旺山·756.6ｍ) 정상의 억새밭 평원을 수놓고 남지읍 낙동강 둔치를 수놓은 노란 유채꽃은 그윽한 향을 뿜는다. 전남 여수 영취산, 경남 창원 천주산, 인천 강화 고려산 등 전국적으로 진달래 명소가 많지만 화왕산은 독특한 풍광으로 많은 이의 발길을 이끈다. 늦가을의 정취를 아직도 간직한 억새와 봄의 절정을 보여주는 진달래가 어우러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화왕산은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니지만 멀리서 보면 산세가 웅장하고 정상부 바위들이 멋진 경관을 이루고 있다. 가을 억새로 유명하지만 봄이면 진달래 물결이 산을 가득 메운다. 특히 남지읍 옆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직선거리가 12㎞밖에 되지 않아 낙동강을 조망하기에 더없이 좋다.

화왕산은 과거 화산활동이 활발해 불뫼·큰불뫼로 불렸다. ‘왕’의 한자는 언젠가부터 ‘임금 왕’(王)에서 ‘왕성할 왕’(旺)자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 지명을 제멋대로 고치면서 ‘날 일’(日)자를 붙였다는 설이 있고 홍수 피해가 많은 창녕 지역에서 물의 기운을 화왕산의 불기운으로 억제하기 위해 ‘왕성할 왕’(旺)자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등산코스로 봄에는 진달래를 볼 수 있는 옥천리길을, 가을에는 억새를 볼 수 있는 자하곡(골)길을 많이 이용한다. 옥천리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길 왼쪽 계곡에 사람 얼굴 모양을 한 큰 바위가 눈길을 끈다. ‘큰 바위 얼굴’이다. 몸체는 없고 하늘을 보며 눈을 지그시 감고 웃음 짓고 있는 여인의 형상이다.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2013년 나타났다고 한다. 2003년 태풍 매미에 의해 땅속 바위가 드러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어 드라마 ‘허준’ 세트장에 닿으면 앞이 탁 트이면서 산에 불이라도 난 듯 거대한 진달래 군락지가 펼쳐진다. 초가집과 어우러지는 1만 7000㎡ 규모의 꽃대궐이다. 세트장에서 고즈넉한 숲길을 10분쯤 걸으면 거친 돌로 쌓은 화왕산성의 동문이다.

산 정상의 분지는 석성으로 에워싸여 있다. 가야시대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왕산성은 둘레 2.6㎞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왜병을 물리친 근거지다. 성 가운데 ‘삼지’(三池) 또는 ‘용지’(龍池)로 불리는 분화구 3개가 있고, 창녕 조(曺)씨 시조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문에서 보면 남쪽 사면 억새 평원에 진달래가 꽃자수를 놓은 듯 곳곳에 무리 지어 화려함을 자랑한다. 화왕산 최고의 진달래 군락지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뤄진 북쪽 사면과 서쪽 사면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한눈에 볼 수 있다. 분지의 경계를 따라 진달래 꽃 테를 두른 듯한 능선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능선을 따라 관룡산과 구룡산이 이어지고 그 너머로 멀리 밀양의 영남알프스 산줄기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멀리 우포늪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조망된다. 서쪽 산 아래 만옥정 공원에는 비화가야의 옛 터전인 창녕을 신라에 편입시킨 뒤 세운 순수비인 ‘진흥왕 척경비’가 있다.

낙동강 변에 자리한 남지읍은 요즘 노란 물결을 이룬다. 이곳은 2002년 태풍 루사로 낙동강 일대에 극심한 수해가 발생하자 창녕군이 수해복구 사업을 하면서 주민 470여 가구를 이주시키고 제방을 축조한 뒤 하천부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유채꽃밭을 조성한 곳이다. 110만㎡(약 34만평)에 유채꽃이 만발해 장관을 펼쳐놓는다.


2006년 제1회 낙동강 유채 축제를 주최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올해도 한반도 튤립정원, 태극기 정원 등 다양한 포토존을 갖췄다. 코로나19 탓에 유채꽃 축제는 취소됐지만 지난해와 달리 꽃밭 진입을 막지는 않는다. 유채꽃은 개화 기간이 길어 약 한 달간 즐길 수 있다.

유채꽃밭 남쪽에 낙동강을 가로질러 창녕과 함안을 연결하는 남지철교가 있다. 1933년 개통한 구마(邱馬) 국도상의 근대식 교량이다. 교각 부분의 트러스를 높이 설치해 강물이 물결치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6·25전쟁 때 25m가 폭파돼 53년 복구된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한때 철거 논란에 휩싸였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보존됐고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도보와 자전거로만 통행할 수 있다.


화왕산을 오르는 코스는 여러 개 있지만 자하곡매표소와 옥천매표소를 출발점으로 하는 코스가 많이 이용된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나들목에서 나와 자하곡으로 갈 수 있다. 옥천 쪽은 영산나들목이 편하다.

자하곡 등산로는 크게 3가지. 창녕읍~자하곡~산림욕장~정상, 자하곡~도성암~정상, 자하곡~산림욕장~전망대~장군바위계곡~정상 등이다. 왕복 5시간가량 소요된다.

남지 개비리길 순환코스의 경우 창나루주차장→창나루전망대→영아지쉼터→영아지주차장→죽림쉼터→창나루주차장 6.4㎞로, 2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트레킹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부곡온천에서 온천욕으로 푸는 것도 좋다. 창녕읍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으며 호텔·콘도 등 다양한 숙박업소를 갖추고 있다.

버들국수가 이색적이다. 잘 덖어 말린 버들잎을 곱게 갈아 밀가루와 섞어 반죽한 뒤 면으로 뽑아낸다.



창녕=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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