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을 떼는 악몽을 수도 없이 꿉니다. 줄줄이 죽어 나가야 상황이 달라질까요. 어떻게 시작한 장사인데….” 서울 서초구에서 갈빗집을 운영하는 김모(51)씨는 15일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평소 넉넉지 않았지만 300만원대 월세와 인건비 등을 내고도 먹고살 만큼 벌어왔다. 수년 전 이혼 후 장사를 시작했는데 홀로 자녀를 키우는 자신에게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 스스로 격려하며 자부심을 가졌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파고는 예상보다 높고 오래 지속됐다. 그는 “지난 12일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된 뒤로는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는 지경에 다다랐다”고 한탄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지난해 3월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손님은 줄었지만 단골이 발걸음을 해줬다. 모아둔 돈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무렵부터 통장이 바닥을 드러냈다. 당시 수험생이던 딸은 과외 수업을 끊고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자녀 학비에 이어 가게 유지비도 줄여야 했다. 김씨는 주방 1명, 낮 시간대 서빙 1명, 저녁 시간대 2명의 직원을 고용했지만 그중 2명을 해고했다. 그는 함께 일했던 직원에게 “코로나로 상황이 어려워져 나가줘야 할 것 같다”고 힘겹게 입을 뗐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직원은 “사장님도 힘들겠지만 내 사정도 조금만 봐주면 안 되겠느냐”며 김씨 손을 잡고 울었다고 한다. 김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밖에 없었다. 김씨는 “그때 그 직원 손을 뿌리치며 속으로 정말 많이 울었다”고 떠올렸다.
재료비도 절반으로 줄였다. 김씨는 모든 반찬을 직접 만들었는데 손님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양배추 장아찌였다. 특별히 신경 써서 고른 최상급 양배추로 만들어 그런지 “포장해 달라” “판매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자부심도 들었다.
하지만 상황이 나빠진 뒤부턴 최상급 양배추를 쓰기 힘들어졌다. 손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당장 내야 할 월세와 재료비 걱정이 더 컸다. 서비스도 줄였다. 김씨는 늘 테이블에 반찬을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심이 후했다. ‘단골 많은 집’으로 불린 이유가 되기도 했다. 손님의 ‘반찬 리필’ 요청에 늘 웃으며 내주던 그였지만 어느 날 ‘아깝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이때 정말 자괴감이 들었다”며 “그날 밤 손님들에게 미안해 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심야 영업시간을 제한하면서 그나마 절반 정도로 이어지던 수입은 3분의 1 수준으로 더 줄었다. 김씨 식당은 직장 건물이 밀집된 지역에 있고 단체 테이블 위주로 구성돼 회식을 많이 하는 식당이었다. 재택근무가 독려되고 회식이 제한되면서 번화가에 있는 음식점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다. 김씨는 “‘겨우 먹고살았다’는 표현이 딱 내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당장 이달 월세를 제대로 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김씨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근근이 월세 정도는 낼 수 있을 만큼 손님이 왔는데, 이번 주 4단계로 격상되면서 말 그대로 ‘쪽박’을 찼다”며 “1년 넘게 잘 버텼는데 이젠 정말 적자가 코앞이라 벼랑 끝에 선 심정”이라고 말했다. 폐업 고민도 잠시 했지만 그래도 나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볼 생각이다.
벼랑 끝에서 매일 치열하게 버티는 사이 올해 대학에 들어간 김씨의 딸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엄마에게 용돈도 쥐어준다. 예전이었다면 손사래를 쳤겠지만 앞뒤를 생각할 처지가 아니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건비 줄이려 극한 노동으로 버텨
코로나19로 매출이 줄면서 자영업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선택지는 인건비 절감이다. 종로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박모(58)씨도 마찬가지였다. 가게는 코로나19 이후 매달 매출이 감소해 결국 1000만원이 넘는 적자를 감당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씨는 “경제난에 허덕이다 10년 동안 가족처럼 일하던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며 “넷이 하던 일을 혼자 하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허탈해 했다.
현재 박씨는 하루에 14시간을 일한다. 지난 3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소스를 만드는 일, 김치를 담그는 일, 그릇을 정리하는 일 모두 박씨 몫이 됐다. 아등바등 버티고는 있지만 현재 매출로는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힘든 형편이다.
긴 터널 속에서 언뜻 보이는 것 같았던 출구는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매출이 소폭 올랐을 때는 ‘이젠 나아지겠지’ 하며 기대에 부푼 적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조차 사치였는지 곧 4차 대유행이 앞을 가로막았다. 박씨 가게 매출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박씨처럼 직원을 내보내고 혼자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자영업자들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직원을 둔 자영업자가 31개월 연속 감소했다. 지난달 기준 자영업자는 558만명으로 지난해보다 2만9000명 늘었지만 이 중 직원을 둔 자영업자는 128만명으로 오히려 8만3000명 감소했다. 전체 자영업자 중 직원을 둔 경우는 22.9%로 집계됐는데 1999년 7월 이후 21년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통계청은 1인 자영업자가 증가한 배경은 생계형 창업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확산과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두 개의 태풍이 함께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박민지 신용일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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