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퇴 17일 만에 야당행, 정치 중립 훼손한 최재형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15일 국민의힘 입당에 참담한 마음을 가눌 수 없다. 엄정한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헌법기관장이 퇴임한 지 불과 17일 만에 제1야당으로 로켓 질주한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원장 본인의 대권 욕심 때문에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 및 독립성을 허물어뜨린 아주 나쁜 사례다. 그가 입당의 변으로 “현 정부 방향 그대로 갔다가는 나라에 어려움이 닥칠까봐 우려됐다”고 했는데 그렇게 걱정이 됐다면 행정기관과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해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할 책무를 가진 감사원장 자리를 끝까지 지켰어야 옳다.

그가 헌법이 보장한 4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것부터 명분 없는 일이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야 1년6개월간 여권 전체가 쫓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던 인사라서 중도 사퇴한 게 이해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최 전 원장은 원전 감사 등으로 여권과 갈등은 겪었지만 매번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내세워 대부분 본인 원하는 대로 감사를 했다. 심지어 감사위원 인사 문제에 있어선 대통령의 뜻을 꺾기도 했다. 여당 의원 한둘이 사퇴 운운했을 뿐 그만두라는 압박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본인이 평소 그렇게 강조해온 감사원의 중립과 독립을 위해서라도 헌법상 임기를 다 마쳤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17일 전까지 감사를 진두지휘하다가 갑자기 뛰쳐나와 제1야당으로 직행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훼손했으니 앞으로 본인이 벌여온 각종 감사 활동에 대한 정치적 시비가 붙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최 전 원장의 야당행을 맹비난하고 나섰지만 여당도 염치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여당이 앞장서서 정치적 중립이 보장돼야 할 곳들을 흔들어댔으니 남 탓할 일만은 아니다. 사정기관장 출신들이 연거푸 대권으로 직행하는 이런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정치권부터 이들 기관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 사정기관장 출신들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것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설사 정치를 하더라도 일정 기간 휴지기를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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