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투자자 몰린 성동·용산… 집값 더 올렸다 [이슈&탐사]

“다 강남 사람들이지 여기 사람은 거의 없어요.”

서울 성동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강남 투자자들 때문에 성수동 전셋값과 매매가격이 덩달아 뛰었다”고 말했다. 또 최근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들 사이에서는 “강남 사람들이 몰려온 성수동은 옛날 성수동이 아니다”거나 “강남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지만 매물이 부족한 곳이 바로 용산”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한강 바로 건너편 성동·용산구로 몰려간 강남권 사람들이 급증한 결과였다. ‘강남 팽창’ 현상이었다.

서울 집값이 폭등한 2017~2020년 강남구와 서초구에 살던 30대들은 성동구와 용산구에 있는 이른바 ‘부자 동네’로 대거 이동했다. 같은 기간 통계청 국내인구이동통계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주로 성동구 서울숲 인근이나 고급 아파트·빌라들이 있는 용산구 한남동으로 이주했다.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한 성동·용산구 주민들이 동대문·서대문구 등 다른 자치구로 떠나는 와중에 나타난 인구 이동 흐름이었다.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한 대책을 쏟아냈지만 되레 집값 폭등 역효과를 초래한 가운데 강남에선 제2의 투자처를 향한 전략적 이동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에서 성동·용산구로 이주한 사람들의 연령대를 보면 30대 비중이 가장 높았다. 자녀가 없거나 학교에 다니지 않는 자녀를 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전입한 곳은 ‘신흥 부촌’으로 불리는 옥수동이나 성수1가1동 등이었다. 용산구 역시 고급 주택이나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한남동과 이촌동 등으로 강남구 주민들이 전입한 사례가 많았다. 강남구에 살다가 2020년 한남동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서모(35)씨는 종합부동산세 중과를 피하려고 이주한 사례였다. 도곡동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서씨는 “가족과 함께 살다가 독립해 살 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2020년 성동구로 넘어간 순이동 인구는 강남구(+4084명)가 가장 많았다. 이어 중구(+1386명) 서초구(+1125명) 등 순이었다. 순이동 인구는 전입 인구에서 전출 인구를 뺀 인원이다. 순이동 인구가 ‘0’보다 크면 전입이 많고, ‘0’보다 작으면 전출이 많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용산구의 순이동 인구는 강남구(+1884명) 서초구(+1837명) 등 순으로 나타났다. 성동·용산구에 전입한 사람들이 주로 강남·서초구민이었다는 것이다.


급상승한 성동·용산구 집값은 이곳으로의 진입 장벽을 높인 상태다. 성동구의 ㎡당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KB부동산 기준)은 2017년 1월 687만원에서 2020년 12월 1359만원으로 4년간 배 가까이 뛰었다. 용산구도 같은 기간 891만원에서 1439만원으로 매매가격이 크게 올랐다. 2020년 12월 ㎡당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 순위는 강남·서초·송파구에 이어 용산구와 성동구가 각각 4위, 5위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강남권 주민들이 성동·용산구로 몰려가면서 초고가 주택 지역인 강남권이 확장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5일 “너무 집값이 오른 강남에 또 투자하기는 겁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오른 지역에 투자한 것”이라며 “부모에게서 증여받은 30대의 부동산 투자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주민들은 강 건너편 성동·용산구로 옮겨가면서 집값이 높은 지역을 골라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이 이미 치솟을 대로 치솟는 강남권 대신 앞으로 상승 여지가 비교적 더 많은 지역으로 이주했다는 분석이다.


통계청 국내인구이동통계를 분석한 결과 강남구 주민들은 2017~2020년 성동구 옥수동(1335가구) 성수1가1동(780가구) 등 순으로 전입했다. 서울숲을 끼고 있는 성수1가1동은 갤러리아포레나 트리마제, 서울숲힐스테이트 같은 아파트들이 들어선 곳이다.

성동구로 넘어간 강남구민 대다수는 소득수준이나 집값이 높은 동네 출신이었다. 주로 강남구 압구정동(203가구) 대치동(151가구) 삼성동(140가구)에서 살던 사람들이 2017~2020년 옥수동으로 이주했다. 같은 기간 성수1가1동으로 전입한 가구는 강남구 청담동(135가구) 논현동(106가구) 삼성동(105가구) 등이 많았다.

강남구에서 성동구로 전입한 연령대는 30대(329가구) 40대(212가구) 등 순으로 많았다. 옥수동 한 공인중개사는 “이곳은 강남과 가까우면서도 집값이 비교적 낮아 강남권에서 ‘차선책’으로 이사 오는 경우가 많다”며 “30, 40대 젊은 부부가 많은데,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면 다시 강남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용산구의 경우 집값이 상당히 높은 한남동 등으로 강남구 사람들이 몰려갔다. 2017~2020년 강남구에서 용산구로 전입신고한 건수는 한남동(1061가구) 한강로동(693가구) 이촌동(568가구) 순이었다. 용산구 내부 이동을 제외하면 이 기간 서울에서 한남동으로 전입한 가구수가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였다.

한남동으로 이주한 강남구 주민 가운데는 역삼동(154가구) 논현동(152가구) 삼성동(139가구) 등에서 살던 사람들이 많았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성동·용산구는 저소득층이 사용하던 주택이 재개발되면서 고소득층이 밀려오는 현상이 나타난 곳”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용산구로 간 강남구 사람들 역시 30대(1142가구)와 40대(651가구)가 가장 많았다. 30대는 주로 강남구 역삼동(240가구)과 논현동(193가구) 삼성동(109가구)에서 살던 사람들이었다. 40대는 논현동(85가구) 대치동(83가구) 역삼동(83가구) 등에서 살다가 용산구로 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남동 한 공인중개사는 “강남에서 ‘좀 산다’ 하면서도 한적한 주거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한남동을 선택해 들어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남권 30대들의 전략적 투자가 강남 팽창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서원석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25일 “구매력 있는 강남 사람들이 고가 주택 지역이 된 성동·용산구로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른바 잘사는 집 자녀들이 분가하면서 이주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동구도 강남 팽창 현상이 나타난 곳이었지만 성동·용산구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용산·성동구로는 강남 사람들이 골라서 들어간 측면이 강했지만, 집값이 서울 중위권인 강동구로는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강동구로 이주한 강남권 사람들 중에선 강남·송파구의 3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송파구(8059명) 강남구(2082명)에 살던 주민 1만141명이 강동구로 이사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젊은 직장인들이 강동구로 넘어간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강남구 한 회사에 다니는 신모(31)씨가 그런 사례였다. 신씨는 2018년 6월 강남구 역삼동 빌라에 전세로 살다가 지하철 5호선 천호역 인근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신씨는 “갑자기 너무 올라버린 전셋값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강동구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구 집값은 서울 동남권 4개 자치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중 가장 낮았지만 최근 상승세는 가팔랐다. 이 때문에 강남권에서 밀려난 사람뿐 아니라 ‘영끌’을 해 강동구로 들어간 강북 지역 사람들도 상당했다. 광진구와 성동구에서 이 기간 강동구로 전입한 사람들은 각각 2848명, 1451명이었다. 광진구 빌라에 전세로 살다가 2019년 전세금 3억5000만원을 낀 ‘갭투자’로 강동구 아파트를 매입한 최모(33)씨는 “그때 안 샀으면 빌라를 못 벗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이슈&탐사1팀 김경택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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