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신의 뜻하신 바

혹시, 이걸 알게 하려고 그랬다는 건가. 샤워 도중 찾아온 통증으로 인해 변기 안전바를 붙잡고 늘어지며 이를 바득바득 갈다 말고 중얼거렸다. 오래전 타인들의 입을 통해서 들을 땐 더할 수 없이 폭력적이었던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뿌옇기만 하던 머릿속이 맑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기독교 계열의 대학재단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가장 불쾌했던 기억은 주말마다 예배 참석을 독려하기 위해 병실을 방문하던 이들에 관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두 다리를 잃고 살이 찢기고 뼈가 갈리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내게, 그들은 매번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어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이라거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못 들은 척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나중엔 악다구니를 쓰며 그들을 병실에서 몰아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믿는 바를 전하는 것뿐이었겠으나 내 귀에 그들의 말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저주처럼 들렸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신에게 어떤 뜻이 있어서 내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면, 그런 뜻을 품은 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신론자가 되기로 했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난데없이 그때를 떠올린 것이다. 오래전 그들이 말하던 신의 뜻이란 것이 정말로 있다면 세상에는 고통에 함몰된 채 살아가는 이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결핍 없는 인생이 소설가로서 내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할 만큼 오만했던 내 몸의 일부를 앗아감으로써 신은 나를 극단적인 결핍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리하여 내가 나보다 더 약한 이들, 세상이 감추고 싶어 하는 이들,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끊임없이 존재가 지워지는 이들의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정말로 그게 그들이 말하던 신의 ‘뜻하신 바’라면 이제는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말이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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