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은 각종 비리 사건의 단골손님이다. 최근 방산 비리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진 비리 의혹에도 상품권이 등장했다. KAI가 2013∼2014년 직원 명절 지급용으로 구매한 52억원의 상품권 중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17억원이 로비 수단으로 사용됐으리란 의혹이 제기됐다.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엘시티 비리 사건에도 상품권이 쓰였다. 현 전 수석은 이영복 엘시티 회장에게서 2011∼2014년 4년간 10만원짜리 상품권 275장을 받았다고 검찰은 적시했다.
유명 백화점 인근 구둣방이나 버스카드 충전소에서는 백화점 상품권을 현금으로 사들인다. 마음만 먹으면 수수료를 일부 떼고 되팔 수도 있다. 이러면 추적이 불가능하다. 뇌물이나 리베이트 등 각종 범죄에 언제든 악용될 수 있다.
한 유통기업 임원급 A씨는 “상품권은 법인카드로 대량 구매가 가능하고, 구매한 뒤 경비 처리할 때 사용처에 대한 증빙이 필요없다”며 “거래처에 선물용으로 주고 남는 것은 개인적으로 쓰는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박종상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상품권은 두세 번만 거치면 누가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특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상품권 규모 확대는 곧 지하경제 확대 징후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상품권 비리가 드러난 사건만 13건에 이른다. 권태환 경실련 간사는 “19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된 이후 상품권 발행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며 “정부와 국회가 상품권법 제정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신금융협회와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김영란법 시행 직후인 10∼12월 법인카드로 백화점 상품권을 결제한 금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5% 늘었다. 같은 기간 개인 신용카드로 결제한 구매액이 1.5%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크다.
연간 상품권 발행 규모는 10조원에 달한다. 국내 유통되는 전체 상품권의 90% 이상을 발행하는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유통사·정유사·전통시장 등의 상품권은 9조552억원이 발행돼 전년(8조355억원)보다 1조197억원 증가했다. 이 중 10만원 이상 고액 상품권은 5조2083억원이 발행됐다. 전체의 57.5%였다. 50만원 이상 상품권만 따져도 1조3570억원어치 발행돼 전년 대비 16% 증가했다.
정부 감독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상품권은 원래 정부 인가를 받아야 발행할 수 있었지만 99년 상품권법 폐지 이후 1만원 이상 상품권을 발행할 때 인지세만 내면 된다. 박 연구원은 “몇 백만원 넘는 고액 상품권을 구입할 때는 구입 주체와 사용처를 확인하는 관리 규정이 필요하다”며 “특히 백화점 상품권, 문화상품권 등 다양한 사용처와 제휴되는 상품권은 현금에 준해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권 간사는 “가장 큰 문제는 발행 주체, 규모, 유통 등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라며 “금융 당국 차원에서 상품권을 관리할 명확한 관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이달 중 입법청원을 하고 법 제정을 위한 다양한 실태 조사와 입법운동을 전개해나갈 계획이다.
글=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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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이후 ‘상품권’ 판매 20% 늘어… ‘비리’ 악용 우려
법인카드로 대량 구매 가능… 너무 쉬운 발행제도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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