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실버 전용극장 전국 4곳뿐… 노인을 위한 스크린은 없다

지난달 26일 오후 1시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현대식 건물 로비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할아버지, 등산복 차림의 할머니가 모여들었다.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했다. 벽에는 1989년 만들어진 영화 ‘백투더 퓨처2’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곳은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 KOFA’. 백발노인들은 왜 영화 마니아의 아지트로 불리는 곳에 찾아왔을까.

손모(69)씨는 단골이다. 1년 반 전부터 미리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매주 여러 번씩 들른다. 손씨는 “멀리 경기도 김포, 수원, 인천에서도 노인들이 온다. 서대문 명화극장이나 종로 허리우드 실버극장 일정표를 훤히 꿰면서 이곳까지 ‘투어’하는 양반들도 있다”고 했다. 빵·음료수를 챙겨 상영관으로 들어서던 김모(84)씨는 “서대문 명화극장에 다녔는데 앞으론 여기로 와야겠다”고 말했다.

2008년 이 자리로 옮긴 시네마테크 KOFA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한다. 개봉관에서 상영이 끝난 영화나 고전영화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3년쯤 전부터 출근도장 찍듯 오는 노인이 급격히 늘었다”고 말했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노년층에게 이런 영화관은 훌륭한 공간이다. 공짜로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노인들의 문화 수요가 높아지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실버영화관’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에는 시가 위탁 운영하는 서대문구 ‘청춘극장’과 예산을 지원하는 종로구 ‘허리우드 실버극장’ 두 곳이 있다. 55세 이상 관객 입장료는 2000원이고, 자막 글자도 크다. 2009년 6만5000명이던 허리우드 실버극장 관객은 지난해 23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엔 안산 단원구의 ‘명화극장’이 유일하다. 인천도 ‘추억극장 미림’뿐이다. 자격 요건을 갖추기 쉽지 않은 데다 지자체 지원을 받는다 해도 적자 운영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서울시 지원을 받는 허리우드 실버극장은 아직도 적자다. 지난해 서울의 한 극장이 추가로 실버영화관 지정 신청을 하려다 저작권 등의 문제로 포기했다.

시네마테크 KOFA에선 신·구세대 갈등도 생기고 있다. 노인 관객이 상영 도중 음식 냄새를 풍기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있어서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박모(29·여)씨는 “어르신들이라 조용히 해 달라고 말하기 어렵고 직원이 나서도 소용없을 때가 많다”고 했다. 최근 예술영화관 관계자들 모임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다. ‘관람예절 캠페인’을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시네마테크 KOFA 관계자는 “늘어나는 실버관객을 포용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에도 ‘나이 든 관객’을 위한 제도가 있기는 하다. CGV 노블레스는 45세 이상 회원에게 할인 혜택을 준다. 지난해 CGV를 찾은 60대 이상 관객은 40.2%나 증가했다. 하지만 노인들에게 멀티플렉스 극장은 아직 ‘먼 나라’다. 이모(59·여)씨는 “매일 찾기엔 비싸고 젊은 사람들 눈치도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기준 우리나라 인구 5134만명 중 65세 이상은 650만명이다. 전체 인구의 10%를 넘는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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