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H는 발표할 때마다 고통스럽다. 가슴이 쿵쾅거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다. 어지럽고, 숨이 차오른다. 목소리가 나오질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발표해야 하는 날엔 등교도 하기 싫다. 하지만 수행 평가를 받아야 하니 너무나 갈등이 생긴다.
원래 수줍음도 많고 내성적이었지만 중학교 때 앞에 나가 발표를 하다가 너무 떨려 중단했던 일이 있었던 이후 불안이 극심해졌다. 심리치료도 받았다. 자신에게 ‘괜찮아 할 수 있어. 난 떨리지 않아, 난 불안하지 않아’ 주문을 외우며 생각을 바꾸어 보려고도 시도해 봤다. 숫자를 세어 보면서 주의를 분산해 봤지만, 소용이 없다. 오히려 긴장이 더해갔다.
거짓말 탐지기(Polygraph :거짓말을 할 때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 박동, 호흡, 피부 전도 등의 변화를 측정하는 기계)를 이용하여,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안심시키는 주문을 외거나 주의를 분산하는 등의 방법을 썼다. 이처럼 불안이 감소하는지를 실험하는 연구를 통해서도 크게 효과가 없음이 증명되었다.
가령 누군가 당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을 때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식은땀이 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상상해 보라. 불가능하다. 이런 불안 반응을 통제하려는 주문 외우기나 분산 요법은 효과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오는 신체 반응과 감정은 정상적인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발표 전에 불안은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까?
발표를 앞두고 의자에 앉아 있다면 등을 곧게 펴고 의자와 몸이 닿는 느낌에 집중해 보자. 의자가 당신을 지탱하고 있음을 느껴보자. 천천히 손끝을 맞대고, 그와 동시에 팔꿈치와 어깨를 부드럽게 움직여 보자. 손가락에서 어깨뼈까지 팔이 움직이는 것을 느껴보자.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여기에 있음을 느껴보자. 힘들고 불안하고 여기서 떠나 피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자신에게 어떤 고통이 있는지 인정해주자. 가슴에 손을 얹고 두고 ‘여기 불안이 있는구나’ ‘여기 긴장이 있는구나’라고 말해 준다.
불안, 긴장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그냥 인정해주자. 그러면서 불안과 긴장과 함께 자신의 ‘몸’이 같이 있음을 알아차리자. 몸은 감정이나 기억과 달리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등을 곧게 펴고 다시 몸 전체를 알아차려 보자. 손, 발, 팔, 다리.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고, 움직이는 것을 느껴보자. 몸을 스트레칭하면서 근육이 늘어나는 것을 느껴보자. 발로 아래를 누르고 바닥을 느껴보자. 방을 위, 아래, 좌우로 둘러보자. 눈에 보이는 다섯 가지를 작은 소리로 불러줘 보자. ‘의자, 책상, 컴퓨터, 화분, 에어컨’ 이런 식으로. 그리고 들리는 소리에 주목해 보자. ‘바람 소리, 시계 소리, 자동차 소리, 발소리’ 이런 식으로. 지금 매우 힘들어하는 고통스러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동시에 의자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몸도 느껴보자. 가볍게 스트레칭하면서 팔과 다리를 스스로 조절해 보자.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은 주의를 분산하여 힘든 것을 잊으려 하는 것과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을 없애거나 줄이려는 등 가능하지 않은 것에 부질없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것을 가슴에 그냥 놔두고, 내가 선택, 통제 가능한 신체를 움직이며, 몸과 부정적인 감정이 함께 있는 것을 느껴보는 거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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