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재(51) 제주 벧엘교회 목사는 최근 교회 성도인 원승윤(56) 권사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혈연도 법적 가족도 아니었지만 10년 넘게 이어온 신앙의 동지를 위해 자신의 몸 일부 흔쾌히 나눈 것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 목사는 2012년 제주로 내려와 기적의교회(김성빈 목사)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시작, 2016년 벧엘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무일푼이었던 원 목사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이가 원 권사였다.
그런 원 권사에게도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다. 원래도 좋지 않았던 그의 신장은 이식이 필요할 정도로 악화됐다. 원 권사는 지난해 말부터 신장 투석을 시작했다.
원 목사는 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저는 권사님과 10년 이상을 동고동락한 사이”라며 “금식기도를 하던 중 ‘네가 신장을 주라’는 마음이 생겨서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다. 가족들도 흔쾌히 그의 결정을 지지해줬다. 심지어 원 목사의 아내는 “남편의 신장이 (원 권사에게) 적합하지 않으면 자신이라도 기증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원 목사는 1년간 혈액검사를 비롯해 건강검진, 신장 적합성 및 정신건강 검사, 보건복지부 승인까지 총 5단계 절차를 거쳐 지난 1월 서울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원 목사처럼 가족이 아닌 이에게 신장을 기꺼이 기증하는 사례는 매우 드문 일이지만, 순수 신장 기증인 가운데 목회자를 비롯한 기독교인의 비중은 큰 편으로 알려진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가 1991년부터 2019년까지 30년 가까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순수 신장기증인 중 67%가 기독교인이었다. 직업별로는 자영업자 다음으로 목회자가 가장 많이 순수 신장기증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까지 본부를 통해 신장을 기증한 목회자는 130명에 달한다.
김동엽 본부 이사는 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기독교인은 오래전부터 장기기증을 신앙적 실천으로 여겨왔다”면서 “한국교회와 함께 전국 곳곳에서 생명나눔예배를 드리며 장기기증의 가치와 의미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 결과 생존 시 순수 신장기증을 희망하는 기독교인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고 말했다.
원 목사는 이번 기증을 통해 교회 공동체에도 선한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됐다. 작은교회지만 가족 같은 공동체로 하나 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신장 이식 수술 후 원 목사와 원 권사는 현재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 있다. 이들은 한두 달에 한 번 검사를 받기 위해 제주에서 서울까지 이동한다. 원 목사는 벧엘교회가 현재 건축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익명의 권사가 토지를 기증해 가능해진 것이다.
원 목사는 “신장 기증과 교회 건축 모두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며 “건축 과정이 만만치 않지만 이 상황 역시 기도로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유경진 김수연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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