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문 권한대행은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이 재판관은 “국가기관이 헌법을 무시할 때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가 흔들린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18일 대강당에서 문 권한대행과 이 재판관의 퇴임식을 열었다. 문 권한대행은 회색 정장에 남색 넥타이 차림이었고, 이 재판관은 하얀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정장 재킷을 입었다. 두 재판관의 가족과 지인 20여명도 자리했다.
문 권한대행은 퇴임식에서 “헌재가 헌법이 부여한 사명을 다하기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 깊은 대화, 결정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쟁점을 검토하기 위해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며 “헌법실무 경험이 많은 헌법연구관이나 교수에게 헌법재판관이 되는 길을 터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재판관과 재판관 사이에서, 재판부와 연구부 사이에서, 현재의 재판관과 과거의 재판관 사이에서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 권한대행은 특히 “헌재 결정에 대한 학술적 비판은 당연히 허용되어야겠지만, 대인논증 같은 비난은 지양되어야 한다”며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대인논증은 경력이나 사상 등을 지적하며 비판하는 것을 뜻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문 권한대행을 비롯해 재판관들에게 그간 이뤄진 ‘이념·성향’ 등에 근거한 일각의 정치적 문제 제기를 우회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적 해결이 무산됨으로써 교착상태가 생길 경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들 한다”며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의 설계에 따르면 헌재가 권한쟁의 같은 절차에서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을 하고 헌법기관이 이를 존중함으로써 교착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문 권한대행은 퇴임식에 참석한 가족들, 고등학교 동창들, 지인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특히 퇴임사 시작에는 헌재 내 테니스 동호회 ‘파워테니스’, 걷기 동호회 ‘뚜호회’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헌재 구성원들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퇴임사 말미엔 “제가 (이름을) 말해야 하는데 까먹은 분 없나요?”라고 장난스럽게 묻기도했다.
이날 퇴임사는 통상 헌재 공문 틀이 아닌 일반 문서 형태로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헌재 로고가 들어가고 재판관 이름이 궁서체로 표지에 적힌 퇴임사가 아닌 ‘표지 없는’ 퇴임사가 배포됐다. 내부에서는 문 권한대행의 소탈한 평소 스타일이 반영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재판관은 임기 6년을 회상하며 담담한 목소리로 퇴임사를 이어갔다. 이 재판관은 “국가기관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고 무시할 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며 “헌법의 규범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우리 헌재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헌법질서의 수호·유지에 전력을 다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재판관은 헌법연구관과 행정, 조경 관리, 청사 보안 등을 담당한 헌재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오로지 재판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헌법재판소를 떠나며 제가 헌재 구성원이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두 재판관은 별도 환송식 없이 기념사진 촬영 후 행사 시작 40여분 만에 가족과 함께 헌재를 떠났다.
두 재판관은 지난 2019년 4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현직 재판관 중 최선임으로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아온 문 재판관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의 재판장으로 탄핵 심판을 이끌었다. 이 재판관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노동법 전문가로, 역대 최연소 헌법재판관으로 취임했다.
두 재판관의 후임은 정해지지 않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면서 잠시 9인 체제가 됐던 헌재는 당분간 7인 체제를 유지하게 됐다. 차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재판관 회의를 거쳐 선출한다. 가장 선임인 김형두 재판관이 맡게 될 전망이다.
박재현 이형민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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