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살에 만난 ‘벽 속의 요정’이 제 대표작 됐어요.”
연극, 창극, 마당놀이,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를 해온 배우 김성녀(74)가 대표작 ‘벽 속의 요정’ 20년 기념공연을 오는 31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연다. 김성녀는 2005년 초연 당시 1인 32역을 소화하는 한편 노래와 춤까지 선보이는 명연기를 펼치며 올해의 예술상,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이후 이 작품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2021년을 제외하고 매년 올려왔다.
김성녀는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와 비슷한 세대의 연극배우들은 자신의 대표작인 모노드라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연출가 손진책)과 함께 극단 미추를 운영하던 입장에서 나를 위한 모노드라마를 할 수 없었다”면서 “2005년 송승환씨가 기획 및 제작한 ‘여배우 시리즈’에서 모노드라마를 의뢰한 덕분에 55살에 비로소 도전할 수 있었다. 당시 결혼 30주년이 되던 해라 남편이 배우가 돋보이는 연출로 선물하겠다고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 극작가 겸 연출가인 후쿠다 요시유키가 스페인 내전 당시 실화를 소재로 쓴 원작은 좌파였던 아버지가 우파 정권이 들어선 뒤 집의 벽에 숨어 살면서 딸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내용이다. 한국 공연은 극작가 배삼식의 각색을 통해 6·25 한국전쟁 직전부터 90년대까지 한국적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날 간담회에 김성녀와 함께 참석한 손진책은 “원작자인 후쿠다 씨가 김성녀 씨에게 어울린다며 권했던 작품”이라면서 “다만 원작이 와닿지 않아서 배삼식 작가에게 각색을 의뢰했는데, 원작자가 감탄했을 정도로 뛰어나게 각색 됐다”고 설명했다.
5살 때부터 무대에 서기 시작해 올해 연기 인생 70년이 된 김성녀는 “20년 전 ‘벽 속의 요정’ 첫 무대에서 모노드라마가 힘들고 외롭다는 것을 실감하는 한편 관객들의 기립박수에 감동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원래 10년만 하려던 공연이 어느새 20년이 됐다. 사실 20년 기념 공연을 ‘굿바이 공연’으로 계획했었는데, 이번에 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30년까지 가보려 한다”고 웃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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