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터 번호표를 뽑아 놓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노인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마술과 온라인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은퇴 목사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화려한 무대복과 모자, 우스꽝스러운 안경까지 걸치고 마술사로 분장했다. 기독교에서는 다소 금기시하는 마술 공연을 능숙하게 펼치고 있다.
주인공은 경북 칠곡군 재능기부단체 ‘어름사니’ 소속의 조석준(77) 씨다.
그는 대한예수교 장로교에 속한 교회에서 50여 년간 목회자의 길을 걷다 2015년 은퇴했다.
조 씨는 은퇴 후 목회자로서 복음을 전달할 수 없게 되자 어릴 적부터 동경해온 마술 공연으로 희망과 복음을 전달하기로 했다.
그는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일부를 처분해 마술 도구를 구입하고 주말이면 서울로 상경해 마술 고수로부터 기술을 배워 나갔다.
부족한 마술 장비는 며느리와 사위에게 몰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며 은근히 압력(?)까지 행사했다.
마술에 쏟아 부은 비용만 5000만 원을 넘어서고 급기야는 거실에 온갖 마술 도구들이 넘쳐나자 부인 이숙이(70)씨까지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신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노인들이 즐겨 찾는 콜라텍과 공원 앞에서 마술 공연을 펼치며 노인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며 밝은 곳으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조 씨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노인들도 성에 대한 욕구가 강해 임질, 매독 등의 성병 문제가 심각하다”며 “노인들이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콜라텍 입구에서 공연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노인뿐만 아니라 ‘칠곡군 어름사니’와 ‘칠곡군 할매할배인형극단’에도 가입해 재능과 끼를 아이들과 주민들에게도 맘껏 나눴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거리 공연이 힘들어 지자 지난 8월에는 유튜브 채널 ‘덕산’을 개설하고 온라인 공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술 이외에 2년 전 부터 배우기 시작한 색소폰 연주까지 가미해 더욱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청년들을 능가하는 우렁찬 목소리로 기합을 넣고 호각, 마술, 색소폰 등을 활용해 40여 편의 다양한 공연 영상을 촬영해 올렸다.
조 씨는 “비록 세상이 정한 이치와 순리에 따라 은퇴를 했지만 목사는 목사”라며 “노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기 위해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마술과 색소폰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경제적 빈곤으로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더욱 어두운 곳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시간의 문제이지 누구나 노인이 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칠곡=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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