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국가 아이티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사망자 수가 2000명 가까이 불어났다. 외신들은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 있다” “죽음의 냄새가 무겁게 깔렸다” 등으로 표현하며 참혹한 현장을 전하고 있다. 아이티에선 지난 14일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했었다.
현지시각으로 17일 아이티 재난 당국은 지진 사망자가 1941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부상자는 9915명으로 1만명에 육박한다. 수도 포르토프랭스 서쪽 125㎞ 지점에서 발생한 이번 지진으로 남서부 도시 레카이, 제레미 등을 중심으로 완전히 부서지거나 망가진 집도 3만7000채가 넘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존자 발견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는 반면 잔해 속에서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여전히 많아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다만 최대 3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2010년 대지진 때의 사망자보다는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밝혔다.
피해 지역의 잔해 더미 속엔 대피할 겨를도 없이 무너진 건물에 깔린 이들의 시신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먼지 냄새와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 있다”고 전했다.
AP통신도 무너져 내린 레카이의 3층 아파트 건물에 “죽음의 냄새가 무겁게 깔려 있다”고 했다. 밤사이 수마까지 할퀴고 지나갔다. 16일 밤과 17일 오전에 열대성 폭풍 그레이스가 몰고 온 많은 비가 쏟아졌다. 일부 지역에선 홍수가 발생했고, 구조작업도 잠시 중단됐다.
열대성 폭풍 그레이스는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채 아이티를 통과한 뒤 현재 멕시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순식간에 강처럼 변해버린 도로, 허리 아래까지 차오른 흙탕물을 헤치고 걷는 남성의 모습 등이 올라왔다.
레카이에선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나무 막대와 방수포, 비닐 등으로 만들어놓은 엉성한 천막이 밤새 내린 비로 망가졌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17일 오전 빗줄기가 약해지자 이재민들은 망가진 천막을 보수하며 지진 3일째 아침을 맞았다. 유니세프는 어린이 54만명을 포함해 120만명의 아이티 국민이 지진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 정부가 아이티에 1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각국에서 도움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현지 상황은 열악하기만 하다. 레카이 천막촌에 있는 한 이재민은 로이터에 “의사도 없고 음식도 없다. 매일 아침 더 많은 사람이 몰려온다. 화장실도, 잠을 잘 곳도 없다. 음식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지진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도 있다며 “거리에서 아이들이 울고 있고, 사람들이 음식을 구걸한다”며 “식량과 깨끗한 물, 잠자리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무너진 집들을 돌며 내다 팔 만한 고철을 찾는 이재민도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은행 앞에는 외국의 가족이나 친척이 부쳐준 돈을 찾으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병원에도 환자들이 복도와 베란다에까지 누워 있는 상황이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병원에서 죽어가기도 한다. 레카이의 한 병원 밖에서 딸의 시신 옆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은 “어제 오후에 병원에 왔는데 딸이 오늘 아침 죽었다. 의사가 충분치 않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유엔은 아이티 지진 피해지역에 의료 서비스와 식수, 쉼터 등을 지원하기 위해 800만 달러를 배정했다. 극빈국 아이티에선 2010년 대지진, 2016년 허리케인 매슈 피해로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나왔었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지원이 밀려들었지만, 아이티 국민은 지원금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제기했었다.
지난달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된 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아리엘 앙리 총리는 2010년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제대로 분배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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