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굴지의 대기업 소속 해외법인 지사장은 직원들 위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갑질’을 했다. A씨와 동료들이 근무 중 작은 실수라도 하면 ‘운하로 뛰어내려라’ ‘머리도 나쁜데 대학은 어떻게 들어갔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본인 혹은 퇴직한 회사 간부들의 개인사업 뒤치다꺼리를 직원들에게 떠맡겼다. 성과가 없으면 강하게 질책했다.
A씨의 선배는 2년 넘게 괴롭힘을 견디다 건강이 악화돼 퇴사했다. 지사장의 막말에 시달리던 A씨도 공황장애 발작을 겪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약물치료를 받았다. 참다못한 A씨는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사내 부당행위 신고 창구에 알렸다. 하지만 지사장은 “선배들에게 배운 한국식 업무 스타일”이라며 되레 A씨에게 자진 퇴사를 요구했다. 결국 A씨도 회사를 나왔다.
직장갑질119는 29일 외국의 지사나 공관 등에서 제보받은 갑질 사례를 모아 발표했다. 지난 7월 한국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전후로 접수된 제보다.
이에 따르면 몇몇 현지 법인장들은 부하 직원에게 자신의 휴가용 항공권을 구해오게 하거나 자신의 집안일을 시켰다. 휴일에도 업무 지시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에게는 귀국을 종용했다. 상사가 현지 성매매 업소를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제보도 여러 건 있었다.
해외 공관에서의 갑질 제보도 접수됐다. 한 대사관저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B씨는 대사 부인의 지나친 간섭에 시달렸다. B씨는 별도로 만들어주던 대사 부부의 일상식 제공을 그만둔 이후부터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대사 부인은 경력 8년 차인 B씨를 상대로 메뉴 선정부터 주방 업무 순서까지 시시콜콜 간섭했다. 갑작스럽게 만두 500개를 만들어 놓으라는 무리한 지시를 내리거나, ‘자기’ ‘당신’이라 부르며 하대하며 삿대질도 했다. B씨가 과도한 개입에 반발하자 “어디다 대고 말대꾸냐”며 강압했다. 괴롭힘을 못 견딘 B씨는 끝내 사직서를 냈다.
피해자들은 해외의 고립된 근무 환경에서는 쉽게 괴롭힘당한 사실을 밝히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 국내 본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도 갖고 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이날 “해외 지사·공관의 특성상 장(長)과 배우자가 왕처럼 군림하고 있고, 노동자는 그만두더라도 다른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아 부당한 일을 당해도 신고하기 어렵다”며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나서서 괴롭힘을 적발하고 엄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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