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고유정(36)의 범행 방법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피해자의 혈액에서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이 검출되면서 범행에 약물을 썼을 가능성이 커졌다.
경찰은 피해자 강모(36)씨의 혈액에서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다고 9일 밝혔다. 고유정의 차량에서 압수한 이불에 묻어있던 강씨 혈액을 통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감정에서는 약독물이 검출되지 않았으나, 경찰이 재감정을 요청하며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경찰은 고유정이 지난달 17일 충청도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아 인근 약국에서 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와 인터뷰에서 “수면제를 먹이고 범행을 저질렀으면 여성의 힘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범행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고유정은) 시신을 훼손할 수 있는 모든 흉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키 180㎝에 몸무게가 80㎏이고 고유정은 키 160㎝, 몸무게가 50㎏이었던 터라 공범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사건 초기에 나왔었다. 이 교수는 “공범이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기가 어려워 개연성이 낮아 보인다”며 “범행 도구 등을 구매할 때도 고유정 혼자였다”고 했다.
이어 “체격적인 차이가 크더라도 수면제 등을 먹여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공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현장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보더라도 벽 쪽이 아닌 천장 쪽에 혈흔이 많이 있다고 한다”며 “(피해자가 누운 상태로) 시신을 훼손당했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강씨가 성폭행을 시도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고유정의 진술에 대해서는 “기망하려는 것”이라며 “우발적인 살인으로 몰고 가기 위한 사전 계획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또 “지금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남편의 휴대전화로 자신에게 문자를 보낸 기록도 있지 않느냐. 이게 다 짜여진 시나리오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뉴시스에 “고유정이 시신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훼손했다”며 “한때 배우자였던 사람을 잔인하게 분해할 정도면 역대 가장 잔인한 범인을 보고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고유정은 지난달 2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강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다. 범행 사흘 전인 지난달 22일 제주 시내 한 마트에서 흉기, 표백제, 등 범행 도구를 미리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범행 후 강씨의 휴대전화로 자신에게 ‘그런 행동을 해서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경찰은 이같은 정황에 따라 이번 사건을 치밀한 계획범죄로 보고 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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