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지난 4일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발사한 이후 우리 군 당국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국방부는 이번 발사가 9·19군사합의를 명확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올해 들어 9·19군사합의 이행이 지지부진해진 상황에서 지난해 이행된 군사적 긴장완화와 적대행위 중지 조치마저 깨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군사 도발을 오랫동안 중단시켜온 ‘상황 관리’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다.
군 관계자는 6일 “이번 발사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우발충돌 방지를 위한 9·19군사합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북한은 이번 발사로 9·19군사합의를 위반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정부는 북한의 이번 행위가 남북 간 9·19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9·19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군 당국 판단은 이렇다. 신형 전술유도무기와 240㎜, 300㎜ 방사포를 다수 발사한 곳은 강원도 원산 북쪽에 있는 호도반도 일대로, 9·19군사합의에 명시된 포병 사격훈련 금지 구역을 벗어난 지역이다. 9·19군사합의서에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 안에서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고 돼 있다. 또 사격이 이뤄진 지역은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키로 합의한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 수역에 해당되지 않는다.
북한 매체는 이번 발사에 대해 ‘전연(전방) 및 동부전선 방어부대 화력타격훈련’이라고 지난 5일 보도했다.
하지만 9·19군사합의에선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우리 군 내부에서도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상태를 고조시킬 수 있는 행위를 중단하자는 합의 취지를 북한이 깼다는 데 이견은 없다.

북한은 9·19군사합의를 깨지 않는 수준에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번 발사는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5형’ 발사 이후 18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북한이 이 기간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했는데 남측에선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리용호 외무상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 있어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라며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인 제재 해제를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제안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앞으로 북한은 ‘군사 분야 조치’와 관련해 한·미 연합훈련의 완전한 중단 요구에 이어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접으라는 주장을 펼 가능성이 있다.
북한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달 25일 1년 3개월 만에 낸 공식 담화를 통해 남측을 맹비난했다. 조평통은 “남조선당국이 간판이나 바꾸어달고 ‘규모축소’ 흉내를 피우며 아무리 오그랑수(술책)를 부려도 은폐된 적대행위의 침략적이며 공격적인 성격과 대결적 정체를 절대로 가릴 수 없다”면서 “군사 분야 합의에 대한 노골적 위반행위”라고도 했다.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도전” “불장난질을 하는 남조선당국의 이중적 행태” 등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달 22일부터 2주간 진행된 한·미 연합 편대군 종합훈련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훈련은 대규모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를 대체해 실시됐다.
아울러 북한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대북 제재에 묶여 있는 상황을 뚫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일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은 이번 사격훈련에서 최대 240여㎞ 떨어진 표적을 설정했다. 이는 비핵화 대화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미 본토를 겨냥한 군사 도발은 아니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측면이 있다. 단거리 발사체 발사로 수위를 조절해 추가 대북 제재 칼날을 피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제재 해제 문턱을 높인 미국을 향해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사거리를 조절해 협상 여지를 남겼다는 분석이다. 오는 9~10일 방한 예정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에게 대북 지원 카드를 요구하는 포석일 수도 있다. 군 소식통은 “북한은 외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군사 수단을 활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의 도발 수위가 점차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전 시작했던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시설에 대한 복구를 지난 3월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집권 2기 지도체제를 정비한 최고인민회의 후 첫 현장지도를 공군부대에서 진행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항공·반항공군 1017부대를 찾아가 비행사들에게 ‘어렵고 복잡한 공중전투조작’을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가 보도한 바 있다. 그 다음 날에는 국방과학원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을 참관했다.
이런 가운데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1시간가량 비공개 면담을 했다. 정 장관과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지난 4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와 관련한 한·미 군 당국 간 분석 결과를 공유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미가 최근 북한의 발사 상황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공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면담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도 지난 4일 에이브럼스 사령관과 전화통화를 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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