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팽목항의 자원봉사자들

Է:2014-05-16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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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7일 오전 검은 재앙이 충남 서해안 바다를 물들였다.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삼성물산의 크레인 부선(동력이 없는 배)이 충돌하면서 원유 1만2547㎘가 태안 앞바다에 쏟아졌다. 사고 발생 초기 파도가 심해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한 데다 원유가 오일펜스를 넘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기름띠는 길이 17㎞ 폭 10∼30㎞까지 퍼졌다. 태안군의 어장 등 8000㏊가 오염됐고 150㎞ 남짓의 해안선이 직·간접 피해를 당했다. 일부 언론은 당시 상황을 ‘검은 황금이 태안 바다를 삼켰다’고 표현했다. 바다는 5년7개월이 지나서야 얼추 제 모습을 되찾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29일 태안 앞바다의 오염 정도가 원상회복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서해안 원유 유출 사고는 한반도 근해에서 일어난 최악의 해양재난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반면 자원봉사 분야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무려 122만6700여명이 자발적으로 기름띠 제거에 나섰다. 사상 최대 인원이 도움을 자원했다. 이들은 매서운 겨울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쪼그리고 앉아 해안가 바위, 돌멩이 하나하나를 정성껏 닦았다. 쩍쩍 갈라진 주민의 가슴도 어루만졌다. 세계 최대 자원봉사기구의 하나인 미국의 포인트오브 라이트 인스티튜트(Point of Light Institute)는 2012년 6월 이 사례를 ‘자원봉사의 등대’로 명명했고, 태안 환경회복에 앞장선 한 자원봉사단체에 ‘특별공로상’을 수여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6일로 한 달이다. 304명이 희생되거나 실종된 상태다. 갈수록 비탄과 분노, 좌절만이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을 짓누르고 있다. 이들의 아픔을 보듬은 것은 정부도 언론도 선사(船社)도 아닌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지난달 16일 394명의 자원봉사자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모두 2만2600여명이 진도 팽목항에서 이들의 슬픔을 나눴다. 주부를 비롯해 휴가를 낸 직장인과 공무원, 생업을 포기한 자영업자와 영업용 운전기사들, 시험을 마치고 달려간 학생들은 실종자 ‘0’이 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각오다. 슬픔을 일체화한 까닭일까. 트라우마를 겪는 자원봉사자들이 적지 않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은 이타주의의 문화적 규범을 배우도록 유전적으로 설계돼 있다고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시간, 물질, 그리고 마음을 내 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기에 세월호 참사 속에서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을 본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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