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대통령의 자식들입니다

Է:2014-05-02 02:30
ϱ
ũ
[여의춘추-이명희] 대통령의 자식들입니다

“국민들은 제 아이 일처럼 적극 나서고 함께 울어주는 대통령을 원한다”

딸은 배가 90도 이상 기울어져 있는데도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켰다. 구명조끼도 입었고, 옆에 애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면서 선실 밖에 있는 친구들을 오히려 걱정했다. 아들은 “엄마, 아빠 사랑해요. ○○○씨 아들이 고합니다” 장난스레 사랑고백을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배 밖에 있는 친구들을 걱정하고 구명조끼가 없다는 친구에겐 자기 것을 양보하며 어른들을 기다렸다.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는 안내방송에는 장난스럽게 일제히 “네”라고 답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 안전할 거라는 믿음, 안내방송에 따라 얌전히 기다리면 어른들이 와서 구해줄 거라는 믿음의 결과는 참혹했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의 믿음을 저버린 데 대한 미안함에, 몇날 며칠 속수무책으로 바닷속에 잠긴 아이들을 바라봐야만 했던 자괴감에 진도로, 안산으로 달려가고 있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이 바치는 일일지라도 몇 시간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책임에 스러져간 아이들이 모두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들 같아서다. 대한민국은 지금 통한의 눈물을 함께 흘리는 중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왜 울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사고 다음날인 지난 17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을 방문했을 때도, 며칠 전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을 때도 담담했다. 양친이 총탄에 맞아 숨지는 끔찍한 사건을 연달아 겪으면서 그의 말처럼 남들이 평생 울 만큼의 눈물을 다 쏟아 눈물샘이 말라버린 걸까. 아니면 자식을 낳아보지 않아 부모 된 심정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표로 TV 연설을 했을 때나 대선을 코앞에 둔 2012년 12월 교통사고로 숨진 보좌관 빈소에서 보인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나.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귓속말하려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손으로 내치며 부모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대통령 모습에 실종자 가족들은 ‘금방 내 자식을 찾을 수 있겠구나’하는 희망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말 안 듣는 장관들은 혼내주겠다며 실종자 가족으로부터 전화번호까지 받아가지 않았는가.

그뿐이었다. 대통령은 늘 그랬듯 3인칭 전지적 작가이자 방관자였다.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행위를 ‘살인’ 같은 행위라고 개탄하고 이번 사고에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내 책임은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나 국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건 팬티 바람으로 다급하게 도망친 선장과 선원들 때문이 아니다.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던 소중한 두 시간을 그대로 허비하고, 보름 동안 단 한 명을 구해내기는커녕 시신 수습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그 무능한 정부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

국가와 대통령의 제1 의무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라고 세금 내는 것이다. 핫바지 총리가 물러난다고, 선장과 청해진해운 소유주를 감옥에 잡아넣는다고 대통령 책임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온 국민은 미안해하는데 대통령은 유가족들을 두 번이나 만났어도 사과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사고 13일 만에 국무회의에서 사과를 했을 뿐이다. 합동분향소에 조문 갔을 때는 유가족이 아닌 일반 할머니 조문객을 위로한 사진이 찍히면서 ‘박근혜 할머니 조문 연출 논란’이 일고 있다. 오죽했으면 유가족들이 “대통령은 분향소에 그냥 광고 찍으러 온 것 같았다”며 조화를 치웠겠는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전사자 명단을 받아들거나 나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런던시내를 둘러볼 때 자주 눈물을 흘려 ‘울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내가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뿐이다”는 명연설로 영국민들을 결집시켜 국가 위기를 극복했다. 국민들은 우리와 같이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는 대통령을 원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
Ϻ 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