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이젠 괜찮아” 안아주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Է:2014-03-10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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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이젠 괜찮아” 안아주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국민일보 힐링 캠프 2박3일…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열일곱 살 여학생 다영이는 쑥스러운 듯 붙잡은 양말을 놓지 않았다. 어머니뻘 나이의 강사도 한사코 다영이의 양말에 매달렸다. 실랑이 끝에 다영이가 포기한 듯 발을 내놓고는 눈을 감았다.

강사는 다영이의 발을 따뜻한 물에 넣은 뒤 손으로 정성스럽게 어루만졌다. 강사가 말했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상처 줘서 미안했구나.” 다영이가 반짝 눈을 떴다.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강사가 같은 말을 반복하자 다영이가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다영이는 “누군가 내 발을 닦아준 건 처음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주최한 ‘학교이탈 청소년 캠프’에서 다영이는 그렇게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강사들이 1대 1로 아이들 발을 닦아주는 세족식은 캠프 첫날인 지난 3일 밤에 있었다. 민영이와 규석이도 겸연쩍다는 듯 처음에는 머리를 긁적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편하게 발을 맡겼다.

◇“저 안 갈래요”=캠프에 참가할 아이들을 모으는 작업부터 쉽지 않았다. 당초 본보 인터뷰에 응한 학교이탈 청소년 40명을 중심으로 섭외를 시도했지만 상당수가 연락두절 상태였다.

그 사이 일부 아이들은 범죄에 연루돼 소년원에 수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로 복귀한 아이들이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이들도 시간을 내 캠프에 참석하기 어려웠다. 결국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국 소속 ‘학교 밖 청소년팀’과 가출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쉼터 등을 중심으로 섭외를 진행했고 캠프 정원인 6명이 참여를 약속했다.

두 명은 캠프 이틀 전 연락이 끊겼다. 규석이는 캠프 전날 “못 갈 것 같다”고 통보해 왔다. 규석이는 오토바이 사고를 냈고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설득 끝에 규석이는 경찰 조사 후 오후 늦게 캠프에 합류했다. 이렇게 4명의 아이들이 어렵게 모였다.

첫 만남에서 아이들은 데면데면했다. 다영이는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틈만 나면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규석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다니는 친구들과 휴대전화로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캠프가 재미없으면 언제든 친구들을 불러 사라질 태세였다. 규석이와 함께 참석한 다해는 “오렌지와 딸기를 먹고 싶다”며 딴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내성적인 민영이는 고개를 숙인 채 굳게 다문 입을 좀체 열지 않았다. 캠프로 이동하는 2시간 동안 아이들끼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 깨기=강사들은 아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보조인력은 물론 취재기자들까지 프로그램에 동참시켰다. 자기소개는 3행시로 했다. 민영이에게 강사들 이름으로 3행시를 짓는 미션이 떨어졌다. 강사들이 먼저 민영이의 이름으로 시를 지었다. 아이들도 각자 지은 3행시를 발표했다. 서로 다른 개성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첫날 일정 대부분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데 할애됐다.

‘협동 그림’ 순서가 이어졌다. 방식은 각자 색연필로 백지에 도형을 하나씩 그린다. 한 명이 한 가지 색깔만 사용해야 한다. 도형이 그려진 종이는 옆 사람에게 전달되며 다시 그림이 더해진다. 이렇게 모두 돌아가면 자신이 처음 손댄 그림이 돌아온다. 색깔로 자신의 그림에 덧칠한 사람을 식별해내는 순서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흘끔거리며 참가자들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간단한 카드게임 후에는 꼴찌에 대한 벌칙이 논의됐다. 다영이가 짓궂게도 강화도 앞바다 입수(入水)를 제안했다. 가혹하다는 의견에 밀렸지만 분위기는 한결 유쾌해졌다. 벌칙은 저녁식사 뒤처리로 결정됐다.

◇과거 상처와 마주하기=과거 상처를 끄집어내는 일도 강사들이 먼저였다. 젊은 남자 강사는 아버지가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뒤 사업이 망하고 온 가족이 빈민가 쪽방에서 생활했던 얘기를 했다. 그는 “아버지 사업이 잘돼 넓은 집에서 살다 단 며칠 만에 단칸방에 가족들이 함께 자게 됐다. 그 뒤 불면증이 시작됐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들은 주로 학교를 그만둔 상황을 말하도록 했다.

명상이나 최면기법도 동원됐다. 편안한 음악 속에 눈을 감도록 했다.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는 자신을 머릿속에 떠올리도록 했다. 괴로워하는 자신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도록 한 뒤 점점 다가가 “이제 괜찮다”라면서 껴안아주도록 했다.

다영이는 가출했다가 길거리에서 친척들에게 붙잡혀 혼난 일을 떠올렸다. 고교에 진학하자마자 담임교사가 “여기는 네가 다닐 학교가 아니다”라며 자퇴를 종용했던 기억도 꺼냈다. 다영이는 “잘해보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화가 나서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규석이는 사고를 치고 난 뒤 아버지의 실망한 표정과 무뚝뚝해진 뒷모습을 보고 더욱 상처 입은 자신을 그렸다. 규석이는 “고통스러웠지만 눈을 뜨니까 다 지나간 과거라는 느낌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다해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 옆에 모르는 아저씨가 서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제 아버지라고 하더라.” 다해는 어머니와 살고 있으며, 이혼한 아버지는 중국에 있다.

◇작은 성취감 맛보기=이튿날은 오전 내내 산책과 체육활동으로 땀을 흘렸다. 여자 아이들은 서로 화장을 해줬다. 오후부터 강사들은 작은 성취감을 맛보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우선 학교를 그만둔 이후 겪었던 일들을 얘기하도록 했다.

다영이는 돈 벌면서 당했던 설움,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해 인정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첫 월급을 타 부모에게 선물했던 얘기도 했다. 강사는 “그것은 학교에서 얻을 수 없다. 열정을 배운 것”이라고 하자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는 듯 표정들이 환해졌다.

자신감이 붙은 아이들에게 강사진은 ‘3분 스피치’ 방법을 강의했다. 시선을 처리하는 법, 청중과 눈을 마주쳐 주목하게 만드는 기법이 소개됐다. 아이들은 여러 차례 리허설을 거친 뒤 본 무대에 섰다. 규석이는 발표에서 “미용실에서 실습하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이들 얼굴에 뿌듯함이 묻어났다.

부모에게 전화하기 미션을 앞두고 강사진과 아이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전화 한 통으로 관계가 좋아질지 의문을 품는 듯했다. 망설이던 아이들이 강사들의 설득에 하나둘씩 나가서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까지 망설이던 규석이도 결국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갔다.

국민일보와 공동으로 캠프를 기획한 박진용 교육컨설턴트는 “아이들의 문제는 결국 어른들의 문제라는 점을 2박3일 동안 실감했다. 아이들은 언제든 변화할 준비가 돼 있었고 그 계기를 찾지 못했을 뿐”이라면서 “이곳 강사들은 단지 아이들 얘기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고 격려해줬을 뿐이다. 그러자 아이들은 스스로 변화를 찾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강화=특별취재팀 이영미 정승훈 차장, 이도경 김수현 정부경 황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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