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충남 당진으로 귀농 8년째 행복한 ‘밥집 아줌마’ 윤혜신씨
소리쟁이, 광대나물, 망칫대, 민들레, 쑥…. 요즘 해뜨면 앞마당에 나가 뜯고 있는 나물들이란다. 박태기, 골담초, 산달나무, 화살나무, 흙감나무…. 며칠 전 볕 좋은 날 뒤뜰에 심은 나무들이란다. 망칫대가 나물이고 박태기가 나무라….
“개망초를 이곳에선 망칫대라 불러요. 꽃피기 전에 살짝 데쳐서 간장이나 된장에 무쳐 먹으면 담백해요. 박태기는 흰색가지에 밥풀대기처럼 작은 마젠타색 꽃이 피어서 예쁘죠.”
윤혜신(46)씨는 이름도 생소한 나물의 맛과 나무의 모양새를 술술 들려준다. 충남 당진 외진 곳에 있지만 서울사람들까지 부러 찾는다는 한정식당 ‘미당’. 도시가 아닌 시골의 봄 음식을 알아보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넣었다. 전화선에선 똑 떨어지는 서울말씨가 들려온다. 뿐이 아니다. 얼마 전 펴낸 책 ‘사계절 갈라 메뉴 303’에 실린 사진을 보니 딱 떨어지는 ‘서울 아줌마’다.
“호호…. 이곳 분들도 겉보기는 서울깍쟁이라고 하시지요. 아직 서울 때를 못 벗어서 그래요.”
서울서 나고 자란 서울토박이였던 그가 시골 살림을 시작한 것은 2004년. 소담한 봄 음식보다 서울내기의 귀농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답은 간단했다. ‘시골서 살고 싶다’는 남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란다. 윤씨 남편 송영수(49)씨도 서울태생으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사업을 한 CEO. 이들 부부는 휘딱휘딱 빨리 돌아가는 서울이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불편했더란다. 이곳에 내려와 자연과 함께 쉬엄쉬엄 살아도 되니 몸도 마음도 편하다고.
귀농 때 가장 걱정은 자녀 교육. 이들도 그 문제로 적잖이 속을 썩였단다. 중3이던 큰딸은 시골 생활이 싫다고 버텼다. 할머니도 봐줄 수 없다고 하자 서울에 남기 위해 죽어라 공부해 기숙사 있는 외고에 들어갔다고. 전화위복인 셈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둘째 딸은 같이 내려왔다가 요리 공부를 하기 위해 5년 전 삼촌이 있는 미국에 갔다.
그들이 새 삶을 위해 둥지를 튼 곳은 23년 전 결혼 때 마련한 농장. 시골살이를 꿈꾸던 송씨는 집을 사주겠다는 부모님께 농장을 사달라고 했던 것. 서울서 비교적 가까운 이곳에 농장을 마련한 뒤 이들 부부는 송씨가 유학 갔던 3년을 제외하고는 철이 바뀔 때마다 들려 낯을 익혔다고. 그러니까 송씨는 유학파란 얘기다. 미국 뉴베리컬리지에서 호텔&레스토랑 매니지먼트를 전공했다고.
“식당을 같이 하고 있으니 남편은 전공 살린 셈이고 저는 어린시절 즐기던 소꼽놀이를 생업으로 확장한 셈이죠. 호호”
타고난 손재주에 시어머니를 거쳐 물려받은 시할머니의 궁중요리법이 더해져 윤씨는 서울에서도 인정받는 요리선생이었다. 시골로 내려왔지만 농사짓기는 엄두가 안 났던 윤씨는 남편에게 “식당하자”고 했고, 레스토랑 경영학을 공부한 송씨도 “오케이”. 그렇게 해서 미당을 차렸다.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전통음식을 알리는 행사에도 참가할 만큼 빼어난 실력이었지만 처음 3년은 죽을 고생을 했단다. 깔끔한 한정식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음식타박을 했던 것. 조미료를 넣지 않아 싱겁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은 성격 다른 부부들이 티격태격 살다 닮아가듯 윤씨의 음식과 손님들이 서로 가까워졌다. 집 앞 텃밭에서 그때그때 뜯어온 나물과 집에서 담근 장과 된장 고추장으로 만들다보니 윤씨의 요리들은 어느새 투박한 시골음식이 됐다. ‘맛없다’고 발길을 돌리던 이들은 조미료 없는 담백한 맛에 익숙해져 ‘맛좋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다.
“봄은 정말 좋은 때입니다. 요즘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맛난 것들이 수두룩하죠. 쑥버무리 애탕국 민들레나물…. 또 장아찌와 효소를 만들어놓으면 일년 내내 맛있는 밥상을 차릴 수 있어요.”
쑥이 질겨지면 가루 내서 떡이나 해먹을까 애탕국은 꿈도 못 꾸니 이맘 때 아니면 먹지 못하는 귀한 봄 음식이다. 여기에 나물 한두 가지만 곁들여도 진수성찬이 따로 없단다. 윤씨는 “장아찌와 효소는 초보자도 마음만 있으면 너끈히 할 만큼 간단하니 한번 해보라”고 부추긴다.
주말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얻기 어려울 만큼 도시와 시골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받는 밥집 아줌마 윤씨. 연분홍 벚꽃 사이로 어느새 초록잎이 삐죽이 내밀고 있다. 봄이 시나브로 지나가고 있는 이번 주말 그의 도움말로 장아찌와 효소를 만들어 가족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차려보자.
◇장아찌 만들기
윤혜신씨는 “채소들이 나기 시작하는 봄, 할머니의 묵은 된장독은 점점 바빠졌다”고 어린 시절을 되돌아봤다. 텃밭에서 나는 채소들은 어김없이 할머니의 된장독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렇게 채소들을 품어 불룩해진 된장독이 진가를 발휘할 때는 여름이었다고. 한여름 장독 속에서 꺼내온 장아찌는 식구들 하루 반찬으로 넉넉했단다. 요즘 아이들 입맛에는 달콤새콤한 것이 더 잘 맞으므로 윤씨는 된장 대신 식초 설탕을 더한 간장에 담가 장아찌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재료>
마늘종, 두릅, 죽순, 매실, 양파, 참외, 마늘 등 채소 1㎏, 간장물(간장·물 2컵씩, 식초 1컵, 설탕 또는 조청 1컵)
<만드는 법>
① 채소를 다듬어 씻어 물기를 거두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참외는 반 갈라 씨를 파내고 껍질째 사용한다. ② 냄비에 간장물 재료를 잘 섞어 끓인 후 완전히 식힌다. ③ 용기에 준비한 재료를 담고 식힌 간장물을 재료가 푹 잠기도록 붓는다. ④ 재료가 떠오르지 않도록 무거운 돌로 눌러 밀봉해 뒀다 일주일 뒤 먹는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일주일 뒤에 간장물만 따라내어 다시 끓인 다음 식혀 붓기를 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 반복한다.
◇효소 만들기
장이나 젓갈이 소금을 넣어 발효시킨 것이라면 효소는 설탕을 넣어 발효시킨 것을 가리킨다. 윤씨는 “설탕도 방부효과가 있어서 재료를 잘 보존, 발효시키는 밑거름이 된다”면서 “설탕이 녹으면서 재료의 고유한 성분을 삼투압으로 녹여내 맛과 영양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효소는 요리할 때 조금씩 넣으면 풍미를 더하고 소화흡수도 도와준다고.
<재료> 매실 솔잎 감잎 마늘 복분자 오디 민들레 질경이 취나물 참나물 미나리 쑥 씀바귀 등 봄에 나는 과일과 각종 풀, 재료만큼의 황설탕.
<만드는 법> ① 재료를 잘 손질해 씻고 물기를 거두어 준비한다. ② 용기(항아리)에 재료와 황설탕을 같은 양으로 잘 섞어 담고 밀봉한다. ③ ②를 습기가 적고 햇빛이 없으며 온도가 낮은 곳에 두고 발효시킨다. ④ 6개월에서 1년 이상 발효를 시키는데, 한두 달 간격으로 한두 번 뚜껑을 열고 잘 섞어준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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