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88만원 세대 ‘개같은 날의 오후’… 스물일곱 정재영씨 ‘아주 특별한 알바’ 이야기

오후 1시.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다. 남들은 오전 일과 끝내고 점심 먹을 시간에 무슨 출근이냐고? 난 파트타이머니까. 쉬운 말로 ‘알바생’이다. 왜, 스물일곱에 알바 하는 사람 처음 보나? 퇴근은 오후 9시, 하루 8시간 근무. 법정근로시간 준수해 초과근무 수당을 여간해선 주지 않는 식품업체에 다니며 ‘오후형 인간’으로 살고 있다. 급여는 시간당 5000원. 최저임금(4320원)보다 680원 많다.

이 직장에서 일한 지는 한 달쯤 됐다. 4년 알바 경력의 동반자, 헤드헌터 업체 ‘알바몬’에서 소개받았다. 채용조건이 좀 까다롭긴 했다. ‘30∼50세. 손이 빠르고 진득하게 일하는 분. 무거운 짐 나를 수 있는 남자 우대.’ 연령 제한에 걸리지만 일단 전화부터 했더니, 사장님이 “정재영씨, 오늘 당장 나오세요” 하더군. 저돌적인 면을 보여준 게 먹힌 것 같다.

회사는 서울 신림동에 있고, 사옥은 아담한 2층 건물. 인터넷으로 주문받아서 다양한 간식을 조리해 배송하는 업체다. 1층은 레스토랑 주방, 2층은 빵집을 생각하면 된다. 1층에선 주로 고기와 생선을 다루고, 2층에선 케이크 피자 쿠키를 굽는다. 월 매출 8000만∼1억원.

회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상품 목록은 이렇다. ‘달콤한 닭가슴살고구마말이, 담백한 연어오븐구이, 눈에 좋은 소 간 쟈키(육포처럼 바짝 말린 것), 칼슘 풍부한 오리오돌뼈, 상어고기 쟈키, 아몬드 양고기 케이크, 연어치즈 쿠키, 다양한 토핑을 얹은 피자….’

공장에서 찍어내는 과자류와는 차원이 다르다. 100% 핸드메이드 푸드, 그러니까 나 같은 직원 7명이 손으로 정성껏 만드는 ‘수제간식’이다. 회사 홍보 문구에는 타깃 고객층을 겨냥해 ‘국내산 천연재료’ ‘無(무)색소, 無방부제, 無화학첨가물’ ‘영양만점’ 같은 표현이 꼭 들어간다. 타깃 고객이 누구냐고? 음… 개들이다.

상어고기와 컵라면

첫 출근은 지난달 14일이었다. 혹시 상어의 속살을 본 적 있나? 20㎏ 상자에 담긴 상어 고기와 연골을 조리대에 풀어놓으면 비린내가 주방을 휘감는다. 생선 비린내와 다른, 굉장히 묵직한 냄새. 물로 깨끗이 씻어 핏기를 없애고,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낸 다음 대형 건조기에 넣는다. 수분이 빠져 쫀득해지도록 저온에서 3시간 이상 말린 뒤 부위별로 포장하는 게 내가 있는 1층의 일이다.

살코기를 육포처럼 말린 ‘상어고기 쟈키’는 100g에 7000원. ‘상어껍데기 쟈키’는 더 비싸다. 7000원에 80g. 돼지껍데기와 비슷한 부위를 같은 방식으로 말린 것이다. 내가 만든 상어껍데기 쟈키는 홈페이지에서 이런 설명과 함께 판매된다.

‘알러지가 심한 아가들도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웰빙 상어껍데기 쟈키. 콜라겐이 풍부하고 기력회복에 좋아요. 돼지껍데기 콜라겐보다 체내 흡수율도 높은 편이랍니다. 지방함량이 매우 낮아서 다이어트가 필요한 아가들, 출산 후 영양보충이 필요한 아가들에게 추천합니다.’

여기서 ‘아가’는 애완견을 말한다. 이곳은 애완견 수제간식 업체다. 상어연골은 개들의 껌 대용 식품으로 팔린다. 칼슘이 풍부해서 뼈와 이빨에 좋고, 골다공증을 예방해주고, 오돌오돌 씹을 때 치석 제거 효과도 있단다. 난 태어나서 한 번도 못 먹어본 상어고기, 우리 고객들은 간식으로 드신다.

우리 회사 제품의 컨셉은 웰빙이다. ‘오리북어채말이’를 보자. 북어를 반드시 여러 번 물에 씻어 염분을 제거한다. 짜게 먹으면 안 좋다고 싱겁게 먹기 캠페인까지 하는 때니까. 멸치 쥐포도 마찬가지로 소금기부터 빼고, 마가린이나 설탕도 절대 쓰지 않는다. 밍밍해진 북어채에 오리가슴살을 예쁘게 감아서 말린 오리북어채말이. 이걸 배송하면 고기가 노릇노릇 익도록 데쳐서 먹는다.

요즘 인기 상품은 단연 소간 쟈키와 소간 쿠키. ‘엔젤아이즈(angel eyes)’가 제니퍼 로페즈의 영화 제목이라고 말하는 당신은 결코 애견인이 아니다. 엔젤아이즈는 눈물이 너무 많아 눈가에 눈물자국 생기는 강아지를 위한 영양제 이름이고, 주성분이 소의 간이다. 간이 눈에 좋다는 말은 들어봤겠지? 엔젤아이즈는 화학첨가물이 들어가지만, 우리 소간 식품은 천연재료여서 부작용이 없단다.

사장님은 애완견 수제간식 조리법을 일본에서 배워왔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지난해 KBS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됐는데, 거기서 사장님이 이런 멘트를 날렸다. “소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모두 사람이 먹어도 되는 음식 재료 그대로예요!” 사장님과 직원들이 단호박닭가슴살말이를 직접 먹는 장면도 방송됐다. 나도 일하다가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집에 좀 싸 가면 좋겠다….’

2층에선 일종의 파티셰(제빵사)들이 일한다. ‘바나나사과과일케이크’ ‘닭고기단호박케이크’ ‘오리구이연어치즈케이크’ 등 7가지 케이크와 10가지 쿠키, 그리고 피자를 만든다. 케이크는 1만1000∼1만3000원, 쿠키는 100g에 6000∼7000원. 케이크가 많이 팔리는데 꼭 양초와 고깔모자를 함께 주문한다. 생일파티가 열리는 모양이다.

직원은 나 말고 40∼50대 아주머니 세 명(둘은 조선족이다), 30대 후반 남자 두 명, 30대 여자 한 명이 있다. 남자 직원 한 명은 만화가가 꿈이었다. 게임개발업체에서 캐릭터 그리다 상급자와 다투고 그만둔 뒤 일자리를 찾다가 여기로 왔다. 그래도 그는 4대 보험에 가입된 정규직이다.

다른 남자 직원은 이러닝(e-learning) 교육컨텐츠 개발업체에 있었다. 큰 기업에서 프로젝트를 발주하면 하청의 하청을 거쳐 마지막에 일감이 주어지는 그런 회사였다고 한다. 수익을 내지 못해 회사가 문을 닫았고, 나처럼 파트타이머가 됐다.

사장님은 여자인데, 우리에게 잔소리를 하는 건 대개 두 가지 경우다. 다 만들어진 간식 모양이 예쁘지 않을 때. 예를 들어 닭가슴살고구마말이는 고구마를 감싸는 닭가슴살이 풀어지지 않게 단단히 말려 있어야 한다. 또 주문 들어온 상품의 재료가 떨어졌을 때. 우리는 개들이 요즘 뭘 좋아하는지 트렌드를 주시하며 미리미리 재료를 사다놔야 한다.

우리 집은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서울 대학동의 방 2개 다세대주택에서 친구 형근이(26), 병철이(19)와 함께 자취한다. 형근이는 학원에서 초등학생 수학 가르치고 월 130만원을 받는, 우리 셋 중 가장 고소득자다. 병철이는 아직 알바 자리를 찾고 있다.

출근 첫날 소고기, 닭가슴살, 상어고기, 훈제 연어 다루는 법을 배우고 오후 9시가 조금 넘어 퇴근했다. 집에 들어서는데… 병철이가 컴퓨터 앞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알바생활자

왜 이런 일을 하냐고? 글쎄, 어디서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길라임(‘시크릿가든’ 여주인공)처럼 ‘삼신할머니 랜덤’까지 거론하긴 좀 그렇고,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해 엄마와 살았다. 엄마는 엘리베이터 부품 공장에 다녔는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실직했다. 그러고 보니, 그 국제기구는 내 삶에도 제법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엄마가 일용직이 되면서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

경기도 시흥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2003년 한신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400만원 학자금 대출로 1학년을 마쳤는데, 2학년 1학기 중간고사까지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휴학신청 기간도 지나버려 제적 처리된 뒤 군대에 갔다. 엄마가 나한테 무척 미안했던 모양이다. 어떻게든 다시 공부시키려고 빚내서 식당을 차렸는데, 제대해 보니 식당이 망해 빚만 늘어 있었다.

그 다음 찾아온 것은 우리나라 일일연속극에 꼭 등장하는 ‘교통사고’. 엄마가 차에 치어 석 달간 입원하신 건 2008년이다. 내가 가장이 됐고, 그때 나는 신용불량자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엄마가 학자금 대출 이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 신청하니 150만원만 갚으라고 했다.

나의 알바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제대로 된 일자리 찾으려면 신용이 필요했고, 신용을 얻으려면 150만원부터 갚아야 했고, 그 돈을 구할 길은 알바밖에 없었다. 시급 5000원×하루 8시간×월 20일=80만원. 두 달이면 150만원 갚겠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혹시 있을까? 알바하면 점심도 안 먹고, 휴대폰도 안 쓰나? 월세 내야지, 공과금 내야지, 엄마 병원 다녀야지….

짧은 대학생활에서 봉사활동 하러 다녔던 복지관이 있다. 거기 선생님이 체육관 관리인 자리를 주셨다. 월 30만원. CGV 영화관 ‘스태프’도 했다. 표도 팔고 팝콘도 튀기고. 그런데 이건 여러 알바생에게 근무시간을 고루 나눠주다 보니 수입이 많지 않다. 서울 강남의 일본식 선술집에서 서빙을 했다. 역시 강남이다. 집이 있던 부천에선 이런 자리면 시급 4500원인데, 여긴 5000원을 줬다. 오후 2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전철 막차 타고 귀가했다.

몇 달 뒤 대출금은 갚았다. 이제 제대로 취직해야지, 했는데 인문계 대학 중퇴자 받아주는 ‘괜찮은’ 일자리 정말 없다. 이력서 잔뜩 보내놓고 알바몬 사이트 뒤져 생활비 버는 일상, 이건 진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늘 불안하다, 내 미래가.

그래도 대한민국 정부는 나를 ‘능력 있는’ 젊은이로 인정해준다. 엄마와 살던 집의 월세(25만원)가 밀려 보증금(600만원)을 거의 다 까먹었다. 동사무소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물었다. “저의 엄마 같은 사람 월세보증금 지원해주는 제도는 없나요?” 우리 엄마는 ‘부양능력’을 가진 아들(바로 나다)이 있어서 자격이 안 된다고 했다. 정부는 ‘시급 5000원×하루 8시간×월 20일=80만원’ 공식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창업도 해봤다. 길에서 ‘수제 소시지’ 구워 파는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동업자 찾는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고 바로 전화했다. 난 노점 판매를 맡기로 했다. 단국대 죽전캠퍼스 앞으로 처음 장사하러 나간 날. 노점을 편 지 30분 만에 ‘○○노점상연합회’라고 적힌 봉고차가 내 앞에 와서 섰다. 여기서 장사하려면 연합회에 가입하고, 가입비와 월 회비를 내라는 것이다. “서로 힘든 처지에 같이 좀 하자”며 웃음으로 대충 넘겨보려다 맞을 뻔했다.

공장에도 다녔고, 조리사가 되려고 1년간 주방보조도 했다. 조리사는 경력이 수입을 좌우한다. 5년은 해야 제대로 된 조리사 대접을 받는다. 내 꿈은 다시 공부해서 중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다. 5년은 꿈을 포기해야 하는 숫자다. 주방보조로 일한 곳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베트남쌀국수 레스토랑. 넥타이 맨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그 중에 상당수는 내 또래인 곳이었다.

‘사랑 참 어렵다’를 이승철이 불렀던가? 사랑은 참 잔인하다. 이 가난한 알바생활자에게도 찾아오더라. ‘시크릿가든’ 길라임이 재벌 3세 만날 수 있었던 건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여인은 전문대 나온 취업준비생이었다. 1년쯤 사귀다, 조리사 생각을 접고 주방보조 그만둔 지난해 여름 헤어졌다. 왜냐고? 당신도 참 잔인하다. 보통 헤어진 연인들은 휴대폰 쳐다보며 다시 전화할까 말까 고민하던데, 그때 내 휴대폰은 받을 순 있어도 걸지 못하는 ‘발신정지’ 상태였다. 요금이 연체돼서.

스물일곱에 알바하면 잃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친구다. 나, 나름대로 외향적이고 유머러스한 놈이다. 그런데 먼저 전화를 못하겠더라. 집에서 혼자 컴퓨터랑 노는 시간이 늘어갈 때 ‘청년유니온’이란 단체를 알게 됐다. 나 같은 청년들이 노동조합 만들어 청년 노동의 질을 높여보자고 모인 커뮤니티.

올 초 조합원으로 가입해 어울리며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이런 고민을 하고 이런 불안을 느끼는 게 나뿐이 아니라는 사실, 이렇게 힘이 될 줄 몰랐다. 거기서 만난 게 형근이와 병철이다. 엄마 집에서 나와야 할 사정이 생겼는데, 대학동에서 함께 살던 둘이 내게 같이 살자고 했다. 지난달 13일 이사한 뒤 월세 43만원 중 3분의 1을 부담하려고 알바몬 뒤져 찾아간 곳이 애완견 수제간식 업체였다.

(정재영씨를 만나 이 얘기를 들은 것은 지난 12일이다. 그는 14일 이 알바를 그만뒀다. 15일부터 서울 관악구의 저소득층 ‘취업성공 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개인별 취업계획에 맞춰 ‘진단→훈련→취업알선’ 순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재영씨는 “큰돈 못 벌어도 좋다. 어떻게든 이 알바에서, 이 불안감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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