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길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
박지성 선수가 축구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11년간 A매치 100경기에서 13골 13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월드컵에 3회 출전,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30세라면 조금 이른 은퇴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은퇴 선언 후 그의 성실성이 새삼 높이 평가되고 있다. 많은 난관을 성실로 극복함으로써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뭔가 더 있는 것 같다. 화려한 골잡이도 아니었고 스타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 이런 허전함은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에서 풀렸다. 재일동포 야구단의 역사를 담은 것이었는데 끝부분에 김성근 감독이 등장해 이런 말을 했다. 길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고. 아버지가 자식을 야단치고 돌아서서 운다는 것이다. 반면 자식 앞에서 너를 위해 아버지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 줄 아느냐고 말하는 순간 아버지 자격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길이 앞에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다.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돌아서서 울었던 모습이 전해지고 기억에 쌓이게 되면 우리는 그를 존경하게 된다. 수많은 인터뷰와 밀착 기사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박지성의 길이 뒤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돌아서서 혼자 보내야만 했던 시간들의 무게가 전해지는 것 같다.
사람들은 현자나 진인을 고전 속에서 찾으려 한다. 마치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사라진 것처럼. 하지만 나는 현재에서 찾는다. 죽은 현자보다 살아 있는 진인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비록 화면을 통해서지만 육성을 들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만날 수도 있는 사람들이기에 나도 모르게 감염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살고 있기에 누리는 행운이다. 사소한 일상사도 그때그때 알려지기에 진짜 모습에 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철학은 홍역과 같다는 말이 있다. 즉 살아 있는 철학자에게서 감염된다는 것이다. 죽은 철학자의 책을 놓고 씨름을 벌이는 것보다 살아 있는 철학자와 함께하는 것이 철학을 배우는 데 더 좋다고 한다.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감염이 된다.
박지성은 김성근 감독과 마찬가지로 길이 앞에 있지 않고 뒤에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다. 자신을 알리기 위해 앞을 다투는 시대다. 자신이 하지 않은 것도, 자신에게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시대에 이런 진인들을 볼 수 있어 기쁘다. 비록 대표선수에서는 은퇴하지만 아직 몇 년은 박지성을 더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이제 부담감을 떨치고 마음껏 축구를 즐기는 진인의 유쾌한 모습을 보고 싶다.
탁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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