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라다크 소녀의 웃음
며칠 전에 내린 눈이 그대로다. 발자국 하나 없는 순백의 세상이다. 적요함과 함께 마음마저 정갈해온다. 모든 대지를 포용하는 하얀 설원처럼 사람들도 저렇게 살 수는 없을까.
지난해 TV에서 툰드라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프로가 방영됐다. 겨울에는 영하 60도, 나무가 없는 땅. 북위 60도 이상의 북극 아래 첫 땅,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혹독한 땅이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이동을 하고, 순록을 기르며 살고 있다. 순록을 생식하고, 순록이 옷이 되고, 순록의 털가죽이 그대로 집이 되는 곳이다. 눈 덮인 평원을 순록과 이동하며 살아가는 그들은 자연의 일부였고, 삶이 자연 그 자체였다.
얼음이 풀리면 그들은 강에 나가 그동안 쳐놓은 그물에서 물고기를 건져온다. 그런데 그들은 물고기든 순록이든 먹을 만큼만 잡는다. 이런 툰드라의 법칙은 두 가지가 더 있다. 처음 본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고, 자기 집에 오는 사람은 이유를 묻지 않고 사흘 동안 먹여주고 재워준다.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땅인데도 나보다 남을 위해 사는 그들의 삶에 부끄러움이 일었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 히말라야 그늘에 사는 라다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고도 1만피트의 고원지대에서 살며 보리를 길러 빵을 만들고, 양을 키워 천을 짜고, 가축의 배설물을 연료로 사용하며 산다. 부족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 개발이 뭔지 모르는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느긋하며 억누를 수 없는 기쁨으로 산다. 라다크 사람 둘이 집을 짓느라고 목수에게 창틀을 부탁했다. 그런데 목수는 만든 창틀을 한 사람에게만 배달했다. 창틀 없이는 집을 지을 수 없고, 새 창틀을 만들 때까지는 몇 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이 저보다 급하게 써야 했나 봐요. 우리는 모두 함께 사는 거잖아요”라며 미소 짓더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깊이 박혀 있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들은 집착을 하지 않는다. 죽음은 시작이고, 시작은 하나의 탄생에서 다른 탄생으로 옮겨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도 ‘투씨 로마’(가을에 지는 낙엽같이)라며 곡을 한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면 “지난번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여요”하며 안부를 묻는다. 그들에게 나이가 든다는 건 자연계의 순환일 뿐이다.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우리는 외모, 학벌, 집안, 재산 등을 보지만 그들은 우선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가를 본다. 공정함과 참을성은 두 번째라고 했다. “예쁜 것은 안 보나요?”는 질문에 “호랑이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잖아요”라며 의아해한다. 그들보다 문명의 발전과 문화를 향유하며 사람답게 산다고 자부하는 우리에게 주는 경종 같기도 하다.
문득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는 않다는 건가요?”라고 되묻는 검은 눈망울의 라다크 소녀가 떠오른다. 눈처럼 살 수는 없을까. 이 물음에 답을 구하기보다 그 소녀의 환한 웃음에 감염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조미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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