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바보’의 항변
고구려 평원왕 때 온달(溫達)은 집안이 째지게 가난해 밥을 얻어다 어머니를 봉양했다. 저잣거리 사람들은 남루한 옷차림의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평소 평원왕은 울보 평강공주를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놀렸다.
나중에 평원왕이 상부(上部)의 고씨(高氏) 집안에 평강공주를 출가시키려 하자 평강공주는 “임금은 식언할 수 없다”며 궁중을 나와 온달과 결혼했다. 평강공주는 패물을 팔아 집과 밭, 준마를 사고 온달에게 학문과 무예를 가르쳐 훌륭한 장군이 되게 했다는 것이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에 얽힌 설화의 줄거리다. 물론 온달은 바보가 아니다.
어린이가 동네 나쁜 형들에게 돈을 빼앗긴 사례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으슥한 골목으로 어린이를 데려가 돈을 요구하고, 없다고 버틸 경우 주머니를 뒤져서 돈이 나오면 100원에 한 대씩 맞을 각오를 하라고 겁박한다. 동전까지 탈탈 털린 어린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부모에게 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니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자녀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눈치챈 부모는 자녀를 설득해 전후사정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학교나 경찰에 알려야 하나, 나쁜 형들을 직접 혼내줘야 하나. 그래도 형들에게 돈을 강탈당하고 온 자녀를 따뜻하게 감싸지 바보라고 나무라는 부모는 없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 국감에서 한국조폐공사 전용학 사장을 바보라고 질타했다. 조폐공사가 행정안전부에 원가보다 싸게 훈장을 납품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옆에 있는 전 사장에게 “손해 보고는 못한다고 해야지, 바보 아니냐”고 일갈했다.
그러자 전 사장이 20일 윤 장관에게 반기를 들었다. 전 사장은 “행안부에 납품가를 올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납품가 인상을 요구한 공문까지 공개했다. 전 사장은 “조폐공사를 바보라고 한다면 납품가 후려치기를 당하면서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도 바보냐”고 반문했다. 그의 발언에 공감이 간다.
조폐공사법에는 재정부 장관이 조폐공사 사장 임명제청권을 갖고 있고, 해마다 장관과 사장이 경영 계약을 체결하도록 명시돼 있다. 윤 장관이 전 사장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 윤 장관에게 전 사장이 바른 소리를 한 것이다. 윤 장관은 소신 있고, 통이 크고, 맏형 같은 인사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윤 장관이 이번 건에 대해 뒤끝이 없기를 기대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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