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엉덩이춤으로 몸 풀고 슛∼… 경주김씨 10남매 하하호호 운동회
가을빛이 짙어진 지난 일요일, 충북 진천 광혜원 공단 운동장은 하루 종일 시끌벅적했다. 운동장에는 ‘2010 경주 김씨 10남매 체육대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대회는 10남매 중 일곱째지만 장남인 김혁동(72·전 배재대 명예 교수)씨의 개회사로 막이 올랐다. “우리는 모두 홍(鴻)자 택(澤)자 쓰시던 아버님의 자손들로 위로 여섯 분의 누님 식구들과 저를 포함해 4형제의 식구들이 모였습니다. 가훈은 진실, 정성, 인내로…(중략) 지난해 신종플루 때문에 건너뛰고 보니 더 반갑습니다.”
개회사에 이어 10남매 가족이 차례로 나와 소개를 했다. 첫째, 둘째, 셋째 내외는 이미 세상을 떠서 그 자녀와 손자, 증손들만 참석했다. 위로 언니들이 모두 돌아가서 제일 어른이 된 넷째 정화(77)씨는 “가족이 다 모이는 체육 대회 때는 언니와 형부들이 더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모임의 최연장자인 다섯째 사위 이문창(78)씨는 몇 해 전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탄 채 나왔다. 막내 근동(60·교사)씨의 외손자로 최연소 참가자인 조영준(20개월)군이 엄마 수민(32·한의사)씨 품에 안긴 채 103번째로 인사했다. 회원이 모두 230여명이라니 절반쯤 나온 셈인데, ‘경주 김씨 10남매 체육대회’라는 플래카드가 무안할 만큼 다른 성(姓)이 많았다. 아들보다 딸이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참가자들은 4가지 색의 조끼를 입고 있었다. 혁동씨가 3년 전 칠순잔치 대신 체육대회를 열면서 마련했단다. 노랑팀은 첫째와 여덟째, 주황팀은 다섯째와 일곱째, 녹색팀은 세째 여섯째 아홉째, 파랑팀은 둘째 넷째 열째 식구로 짜였다. 첫 게임은 족구. 고등학생 이상 남자가 선수로 뛰었다. 우리팀이 이기면 기쁘고, 상대팀이 이겨도 좋으니 실수한 선수가 외려 큰 박수를 받았다. 또 치어리더로 나선 50, 60대들의 막춤에 환호가 쏟아졌다.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즐거운 식사시간. 육개장과 오리고기,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콩조림, 산나물을 상도 없이 바닥에 차려놓았지만 입담이 곁들여지니 잔칫상이 따로 없다. 근동씨는 “1990년 조카들, 조카사위들과 족구를 한 것이 이렇게 발전했다”면서 “1995년부터 누님들 식구들도 모두 나와 줘 정말 고맙다”고 했다. 둘째의 맏딸인 강정자(58)씨는 “외삼촌들이 이런 모임을 만들어줘 얼마나 좋은데 왜 안나오겠느냐”고 화답했다. 첫째의 다섯째 며느리 장인순(52)씨도 “주위에서 모두들 부러워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여섯째 사위 박종수(76)씨는 “씨족문화는 우리의 귀중한 전통으로, 우리 모임이 그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라면서 “자손들을 이곳에 데려오는 것이 곧 산교육”이라고 말했다. 여덟째 희동(69·사업)씨는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걸 부모님이 보시면 얼마나 흐뭇하시겠느냐”며 먼 산을 바라봤다.
잠시 숙연해지는 분위기를 아홉째 철동(68·한의사)씨가 ‘굿 뉴스’로 띄웠다. “아, 우리 아들이 지난주 손녀를 낳았어요.” 그러자 네째의 맏딸 박광분(62)씨도 “우리 큰딸도 지난달에 해산했다”고 말했다. 축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출산율이 낮아서 온 나라가 걱정인데 경주 김씨 10남매 모임에는 출산 소식이 끊이지 않는단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족구 결승전, 여자와 중학생 이하 남자아이들이 선수로 나선 발야구가 이어졌다. 한쪽에선 60대 이상만 참가하는 승부차기게임이 개인전으로 펼쳐졌다. 미니 골대를 만들어놓고 3m 거리에서 골을 넣도록 한 이 게임의 규칙은 공을 차기 전에 엉덩이춤을 추는 것. 모두들 배를 잡고 웃었다. 게임이 펼쳐지는 동안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대형 텐트 3개에선 배추 값이 왜 비싼 지부터 4대강 사업 찬반을 논하는 ‘수다 배틀’이 열렸다. 또 아이들은 삼삼오오 공놀이를 했다.
할머니 외가에 온 넷째딸의 외증손자 신동훈(9)군과 아버지 외가에 온 여섯째딸의 친손녀 박주선(8)양의 촌수는 어떻게 될까? 10남매의 자식들과 친손, 외손, 증손, 외증손 등 4대가 모이니 촌수는 물론 누가 손위인지 알아볼 수 있는 특수 이름표를 만들었다고. 셋째의 증손자인 이태희(5)군의 이름표에는 ‘3-1-4-1 이태희 05’라고 씌여 있었다. 셋째의 맏자식의 넷째 자식의 맏이로 2005년생이라는 뜻.
마지막 경기인 줄다리기까지 끝낸 뒤 우승팀이 가려졌다. 올해 우승팀은 노랑팀, 준우승은 주황팀이 차지했다. 노랑팀은 트로피와 푸짐한 상품을 받았다. 어린이들은 팀 성적과 관계없이 학용품을 한아름씩 선물 받았다. “내년에는 전원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희동씨의 폐회사에 박수와 환호가 일었다. 공식 행사가 끝나자 고 홍택옹의 손자들인 국환(49·7-2), 주환(45·8-2), 종환(45·7-3), 상환(42·7-4)씨와 이전구(48·9-2), 방만성(42·8-3)씨 등 손자사위들이 운동정리에 나섰다. 그리고 오지 못한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편하시라’는 인사를 나누느라 운동장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진천=글·사진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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