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다 Ⅱ
사카이 히데유키는 관서기원을 찾았다. 프로가 되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입단대회 출전 상한 나이는 20세. 28세인 그는 출전 자격조차 없었다. 더욱이 일본은 보수적 나라이다. 하지만 명마를 알아본다는 주나라의 백낙(伯樂)처럼 관서기원은 일본 바둑계 초유의 편법인 ‘프로편입시험’을 도입해 기회를 준다.
시험은 이렇다. 관서기원 소속 프로기사 2명을 상대로 정선(定先)과 호선(互先) 각 한판씩 4판을 둔다. 1승이면 초단, 2승이면 3단, 3승 이상의 경우에는 5단을 수여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이다. 자신을 알아봐준 데 대한 답례인지 그는 4전 전승으로 하루아침에 프로 5단이 되어 “전력투구를 해보지 않은 채 바둑 인생을 중단하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전력을 쏟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프로가 된 첫 해에 33승 5패의 성적을 거뒀다. 모든 프로들의 꿈의 무대인 명인전 리그에 올랐고, 관서기원 1위 결정전 우승(2003), 신인왕전 우승(2004)을 통해 ‘프로 편입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정상으로 한발 한발 나아갔다.
하지만 37세의 중년이 되자 10대와 20대가 주류인 바둑계에서는 그에게 더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 7대 기전중의 하나인 기성전에 올라 연전연승을 거듭해 급기야는 도전자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일본 랭킹 1위이며 4관왕을 차지하고 있는 장쉬 9단을 상대로 3대 2 승리를 거두며 타이틀을 차지했다. 영화 같은 일이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 어쩌면 사카이 히데유키 7단에게 이런 결과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할 뿐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프로의 꿈을 키우고 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이창호처럼 될거야’라는 큰 꿈을 가슴에 품은 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바늘구멍보다도 좁은 길을 뚫고 프로가 된다. 하지만 치열한 프로 세계에서 20대 중반이 되기도 전에 인생의 길을 잃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순수한 열정만으로 덤비기에는 그 벽이 너무 높고, 타고난 기재의 한계에 부딪치고 생활에 발목을 잡힌다.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길이다.
그래도 이 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즐기는 것’이다. 사카이 히데유키 7단은 ‘성공한 승부사’ 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 때문이다.
<프로 2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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