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일이다.중계방송을 누가 진행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달라진다는 게 이 바닥의 묘한 징크스.조춘제씨(57)가 중계석에 앉으면 시청자들은 안심했다.그가 방송한 국제경기는 대부분 승전보로 장식됐다.지난 30여년간 KBS 스포츠캐스터로 명성을 날린 그가 손꼽는 명승부는 83멕시코세계청소년축구다.
이 대회에서 박종환 사단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한국축구 사상 최초로 세계대회 빅4에 들었기 때문이다.한국팀의 경기중계가 있을 때마다 시청률과 광고시장 점유율이 경신됐다.
KBS는 이 대회를 단독 중계하면서 당시로선 큰 돈인 25만달러의 중계료를 지불했다.경기가 거듭될수록 조춘제 캐스터의 음성엔 힘이 실렸다.이제 한고비만 넘으면 꿈에 그리던 4강.
KBS 중계팀은 기대와 설렘으로 방송 준비에 열중했다.이때 대회조직위원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방송을 하려면 마이크와 부스사용료 등의 경비로 3만달러를 더 내라는 것이었다.
KBS 중계팀은 추가경비를 지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생중계는 해야 했고 돈은 없고,고민 끝에 최후의 카드를 뽑았다.마이크 대신 전화수화기를 사용한 것.국내 스포츠 중계 사상 전무후무하게 무려 1백여분의 국제통화로 현장중계를 했다.이날 한국은 스코틀랜드전을 승리로 장식,4강에 진입했다.
하지만 조씨에게도 결정적인 실수의 순간은 있었다.하마터면 영영 방송과 인연을 끊을 뻔했던 해프닝.그것은 지난 81년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였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육사와 해사의 축구경기를 중계하고 있는데 대통령 부부가 입장했다.이때 조춘제 캐스터의 멘트.“전두환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께서 지금 입장하고 계십니다”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그것도 무려 다섯차례나 반복했으니 말이다.더욱이 경기 중계를 마칠 때까지 캐스터와 중계팀 관계자들은 실수를 한 사실을 몰랐다.
집에 와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그리고 걸려온 방송본부장의 전화.“당분간 회사에 나오지 마라.어쩌면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서슬퍼런 5공정권 초기였기에 KBS는 물론이고 문화공보부,청와대까지 발칵 뒤집힐 수밖에.
그렇게 10여일이 지났다.오랫동안 배어있는 언행에서 비롯된 실수로 관계자를 처벌해선 곤란하다는 대통령의 뜻이 회사에 전달됐다.이순자 여사도 KBS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조씨로선 기억하기조차 싫은 `용궁나들이'였다.
/박철성(스포츠평론가)
[추억의 중계석]조춘제 -축구전문 캐스터/승리를 부르는 캐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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