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집사님 한 분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년 우리 교회가 개최하는 전도 행사인 ‘새생명 축제’에 올해는 집사님의 조카를 꼭 데려오고 싶었다고 합니다. 조카는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초대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조카의 한 달 치 아르바이트비를 대신 내주었다고 합니다. 조카가 가진 바쁨이라는 핑곗거리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감싸 안은 것이지요. “강권하라”는 복음의 말씀 앞에 집사님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 복음 전도의 본질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균 이상의 감동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말보다 삶의 진정성에 더 깊이 반응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에게 무언가 다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름은 일반적이며 상식적인 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진짜 감동은 상식을 뛰어넘는 선택에서 시작합니다.
미국의 하형록 회장을 기억합니다. 그는 심장병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 자신에게 배정된 이식용 심장을 다른 환자에게 양보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 그는 그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다시 이식의 기회를 얻어 살아났고 이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팀하스(TimHaahs)’라는 회사를 세웠습니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그 ‘한 걸음 더’가 그의 삶을 바꾼 것입니다.
감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웃이던 유대인 부부는 2만 달러, 우리 돈 4000만원이 넘는 약값을 아무 조건 없이 대신 내주었습니다. 하 회장은 나중에 그 돈을 돌려주려 했지만 유대인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린 당신의 은행이 아니에요. 당신의 친구입니다. 갚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세요.” 그 한 마디는 단순한 선의(善意) 그 이상이었습니다. 삶을 바꾸는 감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상식적 보복의 법을 넘어,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라”고 하셨습니다. 이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억울함을 당한 그대로 갚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그 본능을 넘어서야 합니다. “억지로 오 리를 가자면 십 리를 가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복음의 길이 숨겨져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도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는 로마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갔습니다. 원하지 않았던 그 한 걸음이 가족 전체를 복음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훗날 로마 교회에서 충성을 다하는 신자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억지스러운 상황들을 마주합니다. 또 외면하고 싶은 요청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를 낸다면 그 길이 곧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짜 전도는 초대장 하나 건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초대장을 살아내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상식의 선을 넘어서는 감동, 자존심을 내려놓는 결단, 말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헌신이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이 시대가 바라는 그리스도인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균을 넘는 감동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처럼, 누군가의 기대를 넘어서는 사랑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전도는 그때 시작됩니다. 감동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삶에서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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