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간호 선교사 2인의 헌신 70년 만에 공개

Է:2025-06-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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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 딕·코넬슨 선교사
MCC 파송 부산서 고아·산모 돌봐
이상규 교수 둘의 이야기 최근 책으로 출간

캐나다 간호 선교사 캐서린 딕(맨 오른쪽)이 54년 시립건강아동관리소에서 관계자들과 찍은 사진. 메노나이트 기록보관소 제공

부산서 6·25전쟁 고아와 빈곤 가정을 지원하다 30대에 순직한 두 간호 선교사의 잊혀진 이야기가 70년의 세월을 넘어 최근 알려졌다.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 파송으로 영양실조 위기에 놓인 부산 지역 고아와 산모를 돌본 간호 선교사 버사 코넬슨(Bertha Kornelson·1918~1956)과 캐서린 딕(Katherine Dyck·1925~1956)이 그 주인공이다.

MCC는 기독교 소수 교파인 메노나이트가 국제 구호를 위해 1920년 설립한 비영리 기구다. 당시 6·25전쟁 발발을 계기로 한국 구호 사업을 시작한 MCC는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고아와 과부, 극빈자를 위한 구호·교육 사업을 주로 펼쳤다. 그 일환으로 55~64년 미국과 캐나다 출신 간호사 21명을 전국 병원에 파송해 보육원과 빈민촌 방문 진료, 위생 교육 등을 진행했다. 캐나다 출신 코넬슨과 딕도 이 기간 부산에 배치된 간호사였다.

메노나이트 기록보관소(MAID)에 따르면 코넬슨은 캐나다 위니펙의 메노나이트 브레드런 성경대학에서 2년간 수학 후 밴쿠버의 종합병원에서 간호사 수련을 받았다. 이후 애버츠퍼드와 밴쿠버의 종합병원에서 6년간 간호사로 근무하다 55년 한국행을 택했다. 부산아동자선병원으로 파송된 그는 4세 이하의 어린 고아들을 돌봤다.

구호품을 분배하기 위해 물품을 정리하는 버사 코넬슨. 메노나이트 기록보관소 제공

53년 10월 부산에 온 딕 역시 위니펙 메노나이트 성경대학에서 1년 수학 후 서스캐처원주 퀼레이크연합병원 등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부산에선 시립건강아동관리소(Well Baby Clinic)와 일신산부인과 소아병동 등에서 산모와 아동을 돌봤다. 우유 보급소 일도 맡았던 그는 빈곤 가정에 우유를 정기적으로 공급했는데 이때를 회고한 내용이 메노나이트 정기 발행물인 ‘더 메노나이트’ 56년 1월 24일자에 실리기도 했다.

“많은 아이가 엄마에게 버려지는 듯합니다.… 한편 이런 아이를 자기 아이처럼 키우는 엄마들도 봅니다. 자기 자녀를 키우기에도 충분치 않은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낯선 나라에서 전쟁고아를 돕던 이들의 삶은 안타깝게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56년 여름, 부산 해운대 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두 사람은 너울성 파도에 휩쓸리는 사고로 30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대구 계명대 안에 있는 코넬슨의 묘비. 대장간 제공

두 사람의 장례식은 56년 8월 9일 부산의 한 장로교회에서 열렸다. 딕의 시신은 캐나다로 옮겨져 안장됐다. 코넬슨은 평소 “한국서 죽는다면 그 땅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부산에 묻혔다. ‘일생을 봉사 사업에 헌신함’이라고 적힌 그의 묘비는 현재 대구 계명대에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교회사학자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가 최근 펴낸 ‘더 급한 곳으로 가라’(대장간)에 소개됐다. 이 교수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6·25전쟁으로 발생한 고아는 10만명, 과부는 30만명에 달했다. 아무 대가 없이 이들 구호에 헌신한 MCC 간호사의 섬김을 한국교회가 잊지 말자”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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