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 사전 등록자 4만명 조기 마감, 368개 업체가 480여개 부스 마련, 나흘간 관람객 20만여명 참가 흥행. 최근 뜨거운 반응으로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은 이 행사는 다름 아닌 서울국제불교박람회다. 지난달 열린 한 채용박람회 사적 등록자가 5000명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이 박람회가 받은 관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단순 규모보다 더 이목을 끈 건 반응성이다. ‘오픈 런(open run)’ ‘극강의 시심비(시간 대비 만족도)’ 등 종교 행사에서 기대하기 어려웠던 젊은 세대의 키워드가 등장했다. 실제로 박람회는 사전 등록자 4명 중 3명(76%)이 2030세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람회 현장을 담은 유튜브 영상에 참가자들이 남긴 댓글 ‘힙해서 왔는데 마음 정화하고 간다’ ‘무(無)소유하러 갔다가 풀(full)소유하고 왔다’ 등은 그 자체로 밈(meme)이 됐다.
불교 행사가 불러일으킨 대반향에 한국 기독문화계도 도전을 받았다. 한국교회가 오래전부터 추구해 온 방향성도 종교를 넘어 젊은 세대가 재미있고 의미있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기독교계에서 진행한 박람회의 경우 성경 속 내용을 실사화해 구현하는 식의 전통적 방식이나 기독교 성구 판매, 홍보 기업들의 부스 전시장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국민일보는 젊은 세대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담은 문화 콘텐츠, 상품(굿즈)을 선보여 온 크리에이터들을 만나 기독교 콘텐츠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봤다.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만난 크리에이터들은 “불교박람회가 보여 준 신선한 시도에 큰 도전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B급 ‘병맛’을 넘어선 C(Christian)급 ‘영맛(영의 맛)’ 브랜드를 표방해 온 갓츄의 민영예 대표는 “일상생활에서의 공간 접근성을 생각하면 기독교가 불교보다 훨씬 친밀도가 높을 거로 생각해왔는데 (불교가) 너무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게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박람회를 준비해 놀랐다”고 했다.
이원석 아르예 스튜디오 대표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예수님을 친근하게 경험하게 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도 ‘갓(God)’ 대신 ‘힘(him)’으로 표기해야 하나 나도 모르게 고민하고 소극적이 될 때가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종교의 경계를 허무는 접근이 다음세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다”고 밝혔다.
한국교회 대다수가 목표하는 선교적 사명인 ‘다음세대 복음화’를 위해선 힙한 분위기와 체험을 소비하는 데 적극적인 다음세대의 시선과 마음을 이해하고 맞춰갈 필요도 있다. 추진주 러브 코이노니아 대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젊은 목회자들의 설교 메시지를 경험하는 비기독교인 청년들이 급격히 많아졌다”면서 “(그런데) 정장을 입지 않은 목사님을 향한 악성 댓글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교회 밖에서 문턱 없이 경험할 수 있는 복음 콘텐츠를 오히려 교회 안에서 정죄하려 드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홀리 디스코는 서울 종로와 성수동이 내려다보이는 도심 한복판에서 힙합 음악과 함께 굿즈를 선보여온 팀이다. 박수지 디렉터는 “현장을 찾은 비기독교인 친구들이 래퍼들의 간증을 진지하게 듣고는 ‘다음에 언제 또 하냐’고 거듭 물어오곤 한다”며 “전통적인 것만 따라가면 한계를 깨뜨리지 못하고 그사이에 마음이 닫히면 청년세대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송의금 파인드샬롬 대표는 “소비자 수요 조사를 해보면 수련회 단체 티셔츠 하나를 제작하더라도 청년세대가 원하는 것과 재정을 집행하는 기성세대 사이에 적잖은 간극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독교 관련 굿즈는 질 좋고 세련된 디자인을 갖추고도 저렴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넘어야 할 산”이라고 강조했다.
공간에 대한 열린 시선도 필수적이다. 은희승 한국기독교청년문화재단 대표는 “불교박람회가 서울 코엑스라는 대중적인 공간에서 열렸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단순히 종교적 전시 행사를 넘어 기독교와 젊은 감성이 절묘하게 결합한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려면 교회도 제3의 공간으로 다음세대를 초대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음세대와의 접촉점에서 복음의 본질을 경험하는 크리스천 크리에이터들의 지향점은 같았다. 바로 ‘문화 콘텐츠’라는 하나님이 주신 이 시대의 도구가 복음의 선한 도구로 끊임없이 쓰임 받는 것이다.
“성수동에서 팝업하던 날이었어요. 손님 중 한 분이 예수님 분장을 한 저희 스태프를 붙잡고 최근에 힘들었던 얘길 나누시더니 위로를 받았다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대단한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복음의 통로가 돼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갓츄(하나님 원츄)’를 멈출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민 대표)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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