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 상품 가입과 해지 중 어떤 업무를 도와드릴까요?”
18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의 인공지능(AI) 브랜치. 한 남성이 입구에 설치된 마이크에 대고 “적금 통장”이라고 말하자 눈앞의 화면에 여성 직원이 나타나 이렇게 물었다. 이 은행원은 신한의 고객 응대 우수직원을 본떠 만든 AI 직원. 몇 차례 질문을 한 뒤 고객에게 AI 창구의 번호표를 뽑아줬다.
이날 개점한 이곳은 실제 은행원을 대신해 AI가 금융 업무를 수행하는 ‘무인점포’다. 계좌 개설, 체크카드 발급, 외화 환전 등 간단하지만 자주 발생하는 상담 업무를 AI가 도맡는다. 번호표를 받은 고객이 상담 창구로 가자 남성 모습을 한 다른 AI가 화면에 등장해 “적금 상품 가입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질문을 건넸다. AI 앞에 앉아 “네”라고 대답하면 신분증과 손바닥으로 2차 신분 확인을 거친 뒤 끝까지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 계좌 개설을 마칠 수 있다.
지금까지 단순반복 업무만 부여받았던 금융권 AI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시작하는 모습이다. 그간 금융권은 보안상 이유로 ‘망 분리 규제’를 받아 외부의 AI 사용이 제한돼 있었다. 대부분 금융사에서 AI의 일은 고객의 간단한 질문에 답변하는 ‘챗봇’이나 방대한 양의 등기부등본을 떼는 등 보조 업무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금융 당국이 ‘망 분리 규제개선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금융권은 AI 활용법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 8월 금융위원회는 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해 생성형 AI 활용을 허용하고 클라우드 기반 응용 프로그램(SaaS)의 이용 범위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신한은행 AI 브랜치의 경우 지금은 자체 개발한 대형언어모델(LLM)로 운영되지만 앞으로는 챗GPT 등과 결합해 서비스 고도화가 가능하다. 신한은 이르면 내년 안에 대출 상담, 기업 업무 등까지 AI 행원의 업무를 확대할 계획이다. 다른 은행들도 투자 상담 등에서 AI 활용을 서두르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AI가 자산 포트폴리오를 짜주고 투자 전략을 추천해주는 ‘아이웰스’ 서비스를 내놨다.
다만 AI에게 모든 일을 맡길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AI가 판단한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AI가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면 성능은 높아지지만 금융업은 투명성과 신뢰가 중요해 대출심사 등의 중요한 결정을 맡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아닌 기계의 서비스에 대한 거부감을 낮추는 것도 숙제 중 하나다. 이날 신한의 AI 브랜치를 찾은 현미현(55)씨는 “왜 이렇게 복잡해졌지?”라고 불평하며 입구의 AI 안내원을 지나쳐 들어갔다. 대신 그의 말을 듣고 따라온 사람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기번호를 받길 선택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아직은 AI 이용을 복잡하게 느끼는 고객들도 있지만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처음엔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차츰 익숙해지면 AI 무인점포를 통해 지방의 금융 접근성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구정하 기자 g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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