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미국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수주했다. 국내 조선사 중 20조원 규모의 미국 MRO 시장에 진출한 것은 한화오션이 처음이다. 한화오션이 보유한 함정 기술력과 정비 인프라가 미국 해군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분석이다.
한화오션은 4만t 규모의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MRO 사업을 수주했다고 29일 밝혔다. 이 사업은 노후 군수지원함을 부품 하나하나 분해해서 검사·수리하는 창정비 프로젝트다. 최초 출고 때와 같은 성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게 목표다.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입항해 함정 전체에 대한 정비 및 검사를 받게 된다. 육상 정비 작업도 수행할 예정이다.
미국 MRO 사업 수주를 위해서는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가 주는 함정정비협약(MSRA) 인증이 필요하다. MSRA는 미국 정부가 높은 유지·보수 품질과 기술을 갖춘 조선사와 맺는 협약이다. 한화오션은 지난달 22일 MSRA를 획득했다. 한화오션은 보통 1년 이상 걸리는 MSRA 취득 과정을 7개월로 단축했고, 취득 한 달 만에 MRO 사업 수주라는 결실을 보았다.
한화오션 측은 “미국 해군이 우리의 함정 기술력과 정비 관련 인프라 등에 높은 점수를 준 결과”라고 해석했다. HD현대중공업도 지난달 11일 MSRA를 취득했지만 도크(선박 건조 공간) 가용 일정 등을 고려해 이번 입찰엔 참여하지 않았다. HD현대중공업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MRO 수주전에 뛰어들 계획이다.
시장조사기관 모도인텔리전스는 올해 세계 해군 함정 MRO 시장 규모를 577억6000만 달러(약 77조원)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미국 함정 MRO 시장만 20조원 규모로 4분 1가량을 차지한다. 한화오션 측은 “이번 미국 해군 정비 사업 진출은 글로벌 함정 MRO 시장에서 새롭게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며 “적기에 좋은 품질의 창정비를 제공함으로써 신뢰를 쌓고 적정수익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경남 지역의 정비 관련 중소 업체들과의 상생 협력도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화오션은 전투함 등 미국 해군의 핵심 전략자산에 대한 MRO 사업도 바라보고 있다. 해외 업체들은 군수지원함 같은 비전투함에 한해서만 MRO 사업을 수주할 수 있다. 미국 존스법 등에 따라 해군 전투함의 정비 및 생산은 미국 본토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이 지난 6월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약 1억 달러에 인수한 이유다.
한화오션은 미국 해군이 쓸 선박을 건조할 기회도 엿보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12월 필리조선소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는 대로 미국 당국에 함정 건조 자격을 신청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조되는 세계 정세의 불안 속에 해군력을 증강하려는 미국은 자신들의 선박 건조 역량 및 창정비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며 “한국과 일본처럼 조선업이 발달한 동맹국과 협력 범위를 넓히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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