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지난겨울 강수량이 197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평년 대비 14.7% 수준으로 이번 강원·경북 동해안 초대형 산불의 주원인이 됐다. 기후변화는 이미 중요한 이슈다. 특히 겨울 가뭄과 같은 이상기후는 산불을 더 자주, 더 크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올해 2월 말까지 227건의 산불이 발생해 10년 평균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이번 강원·경북 동해안 산불은 겨울철 가뭄과 초속 25m가 넘는 강풍, 험준한 산악지형, 거대한 연무 등 최악의 조건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도 수시로 방향이 변하는 바람 때문에 진화에 어려움이 많았다. 국가와 지방정부는 보유한 헬기와 인력을 총동원해 열흘간의 긴 사투를 벌여 인명피해를 막았다. 특히 한울원자력발전소, 삼척LNG 생산기지, 불영사와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등 주요 국가시설과 문화자산을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2만707ha라는 역대 최대의 산림피해를 냈고,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고, 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산림생태계가 파괴된 것에 대해서는 산림청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산불이 지나간 현장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적막한 기운이 감돌지만 봄비가 내리면서 다시 작은 생명들이 새싹을 틔워내기 시작했고, 이재민들도 다시 일어서고 있다. 이제 우리도 산불 이후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를 부지런히 해결해야 한다.
우선 아직 끝나지 않은 동해안 지역 큰 산불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5월까지 산불 예방과 감시 강화, 헬기 가동률 향상, 임도 확장, 진화인력 확충 등 인프라 긴급 정비를 신속히 추진 중이다. 이런 긴급조치와 함께 항구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산림청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유관기관의 산불대응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하고, 주택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한 주변 산림관리 방안도 적극 마련해야 한다. 또한 초대형 산불에 대해서는 국가 전체의 대응역량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동원될 수 있도록 국가자원의 총동원체계를 보다 더 강화할 계획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새 정부에서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음으로 산불피해 주민에 대한 신속하고 충분한 생활안정책 지원과 산불피해지 복구·복원이다. 이미 정부는 산불 피해지역에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고 범정부적인 피해 조사와 지원대책을 마련해 지원하고 있다. 산림복구와 관련, 주민 생활권 지역부터 여름철 호우에 대비한 산사태 방지시설을 우선 설치할 방침이다. 산불 발생 지역의 경우 토양 결집력이 약해져 산사태 등 2차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산림청은 지방정부와 유관기관 전문인력으로 조사·복구단을 구성해 정밀 현장조사를 마쳤으며, 응급복구가 필요한 지역은 장마철 이전에 긴급복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또한 삶의 보금자리와 일터를 뺏긴 많은 주민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신속히 지원키로 했다. 특히 송이 채취로 생업을 이어가던 주민들에게 송이산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대안을 마련하고, 또 당장의 생계를 위한 대체 소득작물도 신속히 지원할 방침이다.
끝으로 금강소나무숲이 있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과 멸종위기종 산양서식지와 같은 문화적·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곳은 원래의 숲 상태와 가깝게 회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산림복원 과정에 전문가와 시민단체, 이해관계자 등이 함께 참여해 현지 생태환경에 적합한 최선의 복원 전략을 추진키로 했다. 아직 산불조심기간이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하고 있고 ‘양간지풍’(봄철 강원도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이 부는 4, 5월은 더 위험하다. 경각심을 늦추지 말고 국가와 국민이 한뜻으로 산불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최병암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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