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운동으로 배운 ‘회복 탄력성’

Է:2022-03-11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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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작가·생활체육인


졌다! 잠시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처음부터 졌으면 말도 안 하겠다. 15대 5로 이기고 있다가 19대 25로 역전패를 당하다니. 배드민턴 얘기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틈을 타서 간신히 지역 대회 하나가 열렸다. 새벽마다 눈을 비비며 코트에 나가 연습하지 않았나. 이번 기회에 반드시 꼴찌 등급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선수들끼리 콕을 주고받는 것만 봐도 대충 실력이 드러난다. 연습하는 상대 팀을 보니 만만해 보였다. 혼성 복식 팀으로 나간 남편과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어, 우리가 유리하겠어.’

과연 예상대로 초반부터 승승장구였다. 응원하던 지인이 자리를 뜨는 게 보였다. 이쯤 되면 더 지켜볼 필요가 없다는 신호였다. 하나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법.

복식 경기는 혼자만 잘해서는 소용없다. 파트너와 호흡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 특히 혼복일 경우 여성 선수는 주로 네트 앞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자꾸만 뒤로 빠지는 내 약점을 간파당했다. 상대 팀은 연속으로 나한테만 공격을 쏟아부었다. 그때부터 실점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동점까지 되고 말았다.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앞선 실수에 연연해하다간 순식간에 무너진다. 얼른 잊어버리고 분위기 전환을 해야 한다. 컨트롤은커녕 내 기분은 점점 진창으로 빠져들었다. 같은 팀인 남편의 실력까지 탓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을 쉽게 본 교만함, 치명적인 약점, 게다가 깨져버린 팀워크. 그러니 안 지고 배기겠는가. 몇 년 만에 나간 대회에서 처참한 패잔병이 됐다. 충격에 빠진 우리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아무 말 없이 서로 등을 지고 앉아 있었다. 마치 이혼 선고를 기다리는 부부처럼 보였을 거다.

그때 남편이 먼저 정신을 추슬렀다. “아직 한 경기가 남았잖아.”

그랬다. 리그전이라 한 경기를 마저 치러야 했다. 얼른 관중석으로 올라가 우리가 싸울 팀의 경기를 지켜봤다. 불행하게도 훨씬 더 강력한 팀이었다. 겸손한 태도로 부담 없이 코트에 올라선 우리는 빙그레 웃었다. 이번에는 ‘욕심 없이 즐기자’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예상외로 끝까지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겼냐고? 그럴 리가 있나. 운동과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없던 실력이 갑자기 튀어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재밌었다. 그 바람에 앞선 경기의 참담함을 홀라당 까먹었다. 2패를 한 주제에 탕수육을 먹으며 대회를 복기했다. “내년 대회에 다시 나가서 꼭 우승하자.”

학교나 직장에서 우등생이었던 남편과 나는 지는 걸 잘 못했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고 울분을 터뜨리곤 했다. 주저앉은 바닥에서 일어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얻은 건 체력이다. 하나 그것 못지않게 커다란 혜택은 오히려 정신 건강이다. 마음의 맷집이 단단해졌다. 흔히 말하는 ‘회복 탄력성’이라고나 할까. 실패하거나 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도전하겠다는 의지 모드로 금세 전환했다.

배드민턴 치면서 어떻게 그런 걸 배웠냐고? 해 뜨기 전에 일어나 코트에 나가면 대개 여섯 경기 정도를 한다. 나이든 축인 데다 뒤늦게 배워서 간신히 한두 번 이길까 말까다. 허구한 날 지면서도 라켓을 집어던지지 않는다. “이젠 틀렸어. 다 때려치우자” 해본 적이 없다. 이번엔 졌지만 다음 경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졌어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아침이 오기 마련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이 중얼거린 마지막 대사가 괜히 명언이겠는가.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첫 칼럼 마감이 하필이면 대통령 선거 다음 날이다. 당연히 결과를 모른 채 이 글을 썼다. 만약 혹시라도 기대 밖의 참담한 결과를 마주한다면 내 마음부터 우선 추슬러야 하니까.

마녀체력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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