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월세 시대

Է:2022-02-1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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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논설위원


전세제도는 원래 서울의 곡물창고 임대 방식이었다. 서울로 몰려드는 곡물을 보관해야 해서 창안한 것인데, 사람까지 서울로 몰려들자 주택 임대차에 전이됐다. 1910년 조선총독부 관습조사보고서에 기록된 전셋값은 집값의 7할 정도였다. 한국에만 있는 전세는 100년 넘게 꿋꿋이 명맥을 지켜왔다. 순기능이 매우 커서 그랬다. 월수입의 큰 몫을 주거비로 떼지 않아도 보증금의 은행이자 정도만 포기하면 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사하고픈 동네에 집 살 돈이 부족해도 전세로 이사할 수 있었고, 당장 집 살 여력이 없어도 전세 끼고 매수해 미래의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전세의 질긴 생명력을 보면서 학자들은 이 독특한 시스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해 했다. 시장에서 자생한 것이니 소멸도 시장이 결정하리라 여겨 ‘전세 존폐의 공식’을 구상했다. 임대인 수익률 분석모델이 활용됐다.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 정도인 연 3~5%면 집주인 수익은 전세나 월세나 큰 차이가 없었다. 5%를 크게 넘어서면 전세 주는 게 낫고, 2% 이하로 내려가면 월세가 유리하다고 분석됐다. 집값 안정 추세가 지속되면 자연히 월세 시대가 도래한다는 뜻이었다.

이 공식에 역행하는 현상이 문재인정부에서 벌어졌다. 집값이 폭등했는데 급격한 월세화가 진행됐다. 갭투자 규제와 임대차 3법에 전셋값이 급등했다. 세입자는 치솟은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월세를 택하고, 집주인은 왕창 오른 세금을 충당하려 월세를 택했다. 신규 임대차의 절반을 월세가 차지하게 됐는데, 최근 금리인상까지 가세했다. 전세대출 금리가 연 5%에 육박하게 오르자 전세 살며 이자 내는 것보다 월세가 유리한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3억원을 대출받아 6억원 전셋집에 살 때 은행 이자가 월 125만원(연 5%)쯤인데, 3억원을 월세로 돌리면 월 117만원(전환률 4.7%)이 된다. 세입자가 거꾸로 월세를 선호하게 됐으니 이제 월세 시대라 부를 만하겠다. 시장이 결정할 거라던 전세의 운명을 결국 정책이 재촉한 상황. 씁쓸하기만 하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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