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금융위기→코로나… 10년마다 고용 한파 내몰린 ‘경제 허리’

14년간 여행업계에 종사한 A씨(43)는 지난해 10월 직장을 그만뒀다. 코로나19 사태로 8월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갔는데, 휴직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사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고민 끝에 결단한 것이다.

초등학생 아이가 둘인 A씨는 재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다. A씨는 3일 “오로지 관광·여행업에만 몸을 담아왔는데, 아예 새로운 업종을 알아봐야 할지 아니면 코로나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지금은 사람을 뽑는 곳도 드물고, 있더라도 연령 제한이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40대가 신(新)고용취약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경제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40대 고용률은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만에 최저치 수준으로 떨어졌고, 주력 업종인 제조업 취업자 감소 폭도 다시 확대되고 있다. 40대 실직자가 재취업에 실패하면 한 가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40대는 ‘IMF 세대’로 불린다. 대학을 졸업할 시기에 외환위기가 터져 상당수가 취업에 실패했고, 그나마 직장을 잡은 이들도 30대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나 다시 실직의 고통을 겪었다. 10년마다 큰 위기에 부닥친 40대는 또다시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


40대 고용 상황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40대 고용률은 77.4%로 1999년 11월(76.6%)과 2000년 11월(77.3%) 이후 동월 기준 최저치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직후 및 후유증에 시달린 시기 이후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셈이다. 특히 외환 위기 직후에도 90%대를 유지했던 40대 남성 고용률은 지난해 11월 89.9%로 동월 기준으로 처음 90%대 아래로 떨어졌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실직하는 가장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상황 전에도 저조한 40대 일자리 성적은 문재인정부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고용지표가 개선하는 흐름을 보이던 2019년 10~12월에도 전체 연령대 고용률은 연속 상승했지만, 40대만 유일하게 내림세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일자리를 잃은 40대가 갈 곳은 많지 않다. 40대는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실직을 하더라도 저임금·단기 일자리를 꺼리고, 직종 전환에도 소극적이다. 결국 마지막에 택하는 길이 자영업인 경우가 많지만, 높아진 최저임금 부담에 과거처럼 재기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경제활동을 포기한 이른바 중년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청년 니트와 중년 니트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40대 니트는 19만5000명에 달했다. 절대적인 숫자는 20대가 많지만, 30대와 40대로 갈수록 증가세가 가파르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40대 고용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우리 경제의 중추이자 허리이기 때문이다. 가장 1명의 고용 악화는 전체 가구의 생계에 영향을 미친다. 가계소득 악화는 민간소비 감소→내수경기 침체→기업 매출 하락→고용 감소→소비 둔화라는 악순환의 출발점이다.

정부도 40대 고용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정부는 2019년 말 ‘2020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1분기 내로 40대 맞춤형 일자리 대책을 내놓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재정 투입을 통한 노인 일자리 등 고용시장이 막판 회복되는 기미를 보였음에도 40대만 부진을 면치 못하자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40대 일자리를 위한 범부처 태스크포스(TF)도 출범했다.

문제는 대책 발표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이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상황으로 고용 충격이 전 연령층에 미치자, 또다시 40대 고용 대책은 청년층·취약계층 일자리보다 후순위로 밀리게 됐다. 5대 인력 부족 분야에 직업훈련, 체험, 채용을 연계하는 일자리 패키지 신설(리바운드 40 플러스), 조기 재취업수당 지급수준 상향, 창업지원 확대 등 일부 내용이 지난해 하반기경제정책방향에 담기긴 했지만 빈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가 선정한 5대 인력 부족 분야는 스마트제조기업, 건설근로, 버스 운전, 뿌리기술, 차부품 자동화제어·품질관리다.

40대 일자리 대책은 중요한 만큼 접근하기 까다롭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공통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40대는 한창 자녀들에게 돈이 많이 들어갈 시기를 책임지는 한 가정의 가장인 경우가 많다”며 “40대 실직자는 저임금·단기 일자리는 원하지 않고, 새로운 직종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은 등 문제도 얽혀 있어 해법이 까다롭다”고 말했다.

일단 단기간에 고용지표를 개선하기 위한 한시적 대책보다는 실제 고용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40대 취업난은 경제활력 저하, 노동비용 상승 등 구조적인 원인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중장년 재취업은 각자가 쌓아온 경력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전 연령대에 걸친 직업 교육이나 진로 상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끊이지 않고 나온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청년·노령층과 달리 중장년층 고용대책은 단순히 정부 차원의 재원투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기업이 이윤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규제완화·산업재편을 통해 민간영역에서 일자리가 생길 수 있도록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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