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이 10% 안팎까지 이르며 급등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1년 만에 최대 수준이다. 흔히 저축률이 높은 것은 경제에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높아진 가계저축률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소비 부진과 내수 악화로 이어지면서 ‘3저(저성장·저물가·저금리) 현상’ 심화를 불러올 수 있다.
29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조사통계월보의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가계저축률 상승 고착화 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가계저축률은 10%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현실화될 경우 1999년(13.2%) 이후 최대치다. 2015~2019년 평균(6.9%)보다도 3.1% 포인트나 높다.
저축률이 상승하면 일반적으로 기업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늘어난다. 연구·개발(R&D) 투자도 확대되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경제가 불확실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투자 위축→저축률 상승→소비 감소→경기 부진→투자 위축’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실제 경제 위기 때는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투자가 위축되는 반면 저축률은 높아지곤 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가계저축률은 20.4%로 전년도(13.1%)보다 7% 포인트 넘게 올랐다. 미국의 경우 개인저축률은 지난해 7.5%였는데, 코로나19 피해가 심해진 지난 2분기에는 3배 넘게(25.7%) 치솟았다. 유로 지역도 같은 기간 12.9%에서 24.6%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연구를 총괄한 한은 조사국 이용대 과장은 “올해 국내 가계저축률 상승은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감염 우려 등으로 여행이나 숙박, 음식 같은 대면 서비스 부문에서 소비가 위축된데 따른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경기 부진이 길어지면 가계의 미래 예상소득이 줄고, 금융 대출도 어려워진다”면서 “이에 대비한 가계의 저축 성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득 불평등도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가 길어지면 저소득층 소득은 더 크게 감소하는 반면 저축 성향이 높은 고소득층의 소득은 전체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기 때문이다. 가계저축률 상승 추세가 이어지면 소비 부진이 길어지면서 내수부양 효과가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이 과장은 “(장기적으로는) 저축(자금 공급)이 투자를 위한 자금 수요를 상회하는 가운데 수요도 줄면서 저성장·저물가·저금리 등 이른바 ‘3저 현상’이 코로나 시대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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