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시간에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반려견이 수업을 듣는 사람의 주변에서 어슬렁거린다. 강의를 듣던 부모가 어린 자녀의 요청에 잠시 사라져 버린다. 돌이 갓 지난 아기의 등장에 강의를 듣던 다른 사람들이 아기를 향해 반가운 손짓을 하느라 주의가 잠시 흐트러진다. 이번엔 강사의 자녀가 등장해 또래 친구에게 아는 척을 한다. 세미나는 밤 9시에 시작해 밤 10시30분에 마친다. 실제 강의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날 세미나는 엉망이었을 것이다. 강의도 늦게 끝나 귀가하기도 부담스럽다.
그런데 세미나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자 자리에서 음소거를 하고 참여하면 모두의 소음이 차단된다. 돌발상황도 n분의 1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강의 흐름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위 상황은 필자가 담임으로 섬기는 교회에서 수요일 저녁 온라인 화상 플랫폼 줌(ZOOM)으로 신앙세미나를 진행했을 때 벌어진 풍경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도보여행 중 새벽녘 길에서 만난 강도 같았다. 예정에 없던 공격에 모든 계획은 망가지고 동행자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아침이 되고 나서야 벌어진 일의 실체가 눈에 들어왔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동행자들의 부상도 심했다.
그런데 그런 피해 말고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계획 자체가 다소 무리였는데도 욕심을 낸 일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 몸이 좋지 않아 힘들어하던 일행이 있었는데 몰랐다. 목적지에 무조건 빠르게 도착하는 것만 신경 쓰다 보니 놓쳤던 부분이다. 동행자들과 대화를 더 하고 풍경도 즐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강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강도를 만난 덕분에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의 이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코로나19를 만난 우리도 그렇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놓치고 있던 많은 부분을 깨닫게 해줬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걷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라는 점도 알게 해줬다. 어떤 길은 차를 타는 게 더 좋고 자전거를 타면 좋은 길도 있다.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 우리 여행을 풍성히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1984년 한국에 가정용 컴퓨터가 막 보급될 무렵, 미국에서 활동하던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동료 사역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술을 선용하라는 조언을 다음과 같이 했다.
‘빛의 자녀들은 적어도 어둠의 자녀들만큼은 영리할 필요가 있어요. 집 안에 컴퓨터와 전기 배선을 잘 갖추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 같아요.’(책 ‘사랑을 담아, 헨리’ 중 한 구절)
기술을 잘 활용하는 것이 복음 전파에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그간 전통교회들은 온라인을 활용한 사역을 미뤄둔 숙제처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도들은 점점 가정에 목회자가 심방 오는 것을 꺼렸고, 주중 낮에 진행되는 성경공부나 소그룹에 참여하는 비율도 낮아지고 있었다. 도심의 경우 목회자는 실제 성도를 만난 시간보다 도로 위에서 이동하며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직접 만날 때의 친밀감에서 오는 긍정적인 면과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보니 교회는 늘 해오던 대로 사역을 반복해 왔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우리가 고수하던 두 측면의 정반대 면을 보게 했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됐다. 현장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온라인도 꽤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간 선교의 영역에서만 기술을 활용하는 정도였다면, 온라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낮아진 이때 예배와 교육, 친교와 봉사의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발전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적기가 도래한 것이다. 지금은 복음을 들고 온라인이라는 문을 활짝 열 때다. 거기엔 또 다른 가능성의 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우웬의 말처럼 우리는 더욱 영리해질 필요가 있다.
성현 목사(필름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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