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의회가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출마를 배제한 새로운 대통령 선거 개최안에 합의했다. 선거 개표조작 의혹으로 촉발된 볼리비아의 혼란이 잦아들지 주목된다.
AP통신 등은 23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상·하원이 선거 조작 의혹으로 멕시코로 망명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후임자를 선출하기 위한 새로운 선거 법안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새 법안은 지난달 20일 실시한 대선 결과를 무효화하고 새로운 대선을 실시토록 했다. 특히 2번 연속 임기를 지낸 대통령은 동일한 자리에서 또 대선에 나갈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출마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
상원은 이날 오전 만장일치로 해당 법안을 가결시켰고, 하원에서 뒤따라 이를 통과시켰다. 상·하원 모두 모랄레스의 소속 정당이었던 사회주의운동(MAS)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앞서 MAS 소속 헬리 카브레라 하원 부의장은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서 MAS 후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불출마를 예고한 바 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 중인 제닌 아녜스 전 상원 부의장은 트위터에 “볼리비아 국민의 요구를 이해하고 들어준 국회의원들에게 감사하다”며 24일 해당 법안을 공포하겠다고 밝혔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의 승인을 거쳐 법제화되면 대선이 재실시될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법안은 대선 날짜를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2006년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된 뒤 14년간 장기집권하다 지난달 2일 대선에서도 승리했으나 개표조작 의혹이 불거져 군과 경찰까지 퇴진을 압박하자 사퇴했다. 그가 멕시코로 망명한 후 지지자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최소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MAS와 임시정부가 나서 새로운 대선 실시를 합의했고, AP통신은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다만 모랄레스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모랄레스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직무 중 저지른 범죄 의혹에 대해 재판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MAS 제출 법안을 이날 기각했다. 그는 “내 결정은 명확하고 확고하다”며 “나는 이 법안을 공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전날 아르투로 무리요 내무장관 직무대행은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시위대에게 도로 봉쇄를 유지하라고 종용했다며 테러와 폭동 선동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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