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예고한 대로 중국산 제품에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을 안고 가야 하는 한국 금융시장은 당분간 가시밭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연초 이후 ‘견인차’ 역할을 했던 외국인투자자는 자금을 빼기 시작했다. 치솟은 원·달러 환율과 어두운 경기 전망도 증시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그나마 지난해와 달리 완화적인 주요국 통화정책이 증시 추락을 막아줄 ‘안전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한 주에 4%가량 하락했다. 미국의 대중(對中) 관세율 인상 소식이 알려진 10일 장중에 2100이 무너지기도 했다. 코스닥지수는 10일 722.62에 마감하며 일주일 동안 5% 넘게 빠졌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12일 “증시 급락의 가장 큰 원인은 미·중 무역전쟁이지만 국내 증시 관점에선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높았던 것도 낙폭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은 증시에서 자금을 빼내기 바빴다. 연초 이후 매수세가 강했던 외국인은 ‘팔자’로 돌아섰다. 지난 한 주간 외국인은 한국 증시에서 3160억원을 순매도했다. 기관도 같은 기간 코스피 시장에서만 1조1869억원을 팔아치웠다.
미·중 무역협상이 예상과 달리 길어지면서 앞으로 증시도 살얼음판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는 중국 의존도가 높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를 금융시장이 미리 반영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무역전쟁이 불거지기 이전부터 증시를 짓눌러온 국내 기업의 실적 부진도 여전하다. 주요 증권사들은 이번 주 코스피지수 등락 범위를 2050~2150으로 예상한다. 환율은 단기적으로 1200원 선을 찍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와 같은 약세장이 재현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추이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경고를 했을 때 주가 변동이 커졌고, 실제 부과 이후엔 주가 반응이 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금융감독원도 12일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지난 9일 국내외 금융시장이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에는 협상 지속에 대한 기대로 불안심리가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입장 변화도 폭락장이 연출되지 않을 것이란 예측에 힘을 싣는다. 하 연구원은 “지난해에는 연준의 긴축 기조가 지속되고 있었지만 현재는 기준금리 인상이 아닌 인하 가능성이 논의되는 상황”이라며 “연준의 완화적 스탠스가 유지되는 한 증시 낙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유로존의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면 달러 가치 강세 압력이 수그러들면서 국내 금융시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무역협상 이슈의 변동성이 큰 만큼 다른 이벤트에도 주목해 시장 방향성을 가늠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주에는 연준 위원들의 연설이 잇따라 예정돼 있다. 연준 위원들이 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언급한다면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14일 발표될 유로존의 3월 산업생산지표도 향후 달러 흐름을 짐작하게 해줄 실마리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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