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18번 홀(파4). 두 번째샷만에 볼을 그린에 올렸으나 홀까지 22m, 2퍼트면 우승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신중하게 라인을 살핀 뒤 퍼터 페이스를 떠난 볼이 한참을 구른 뒤 홀 주변에서 거의 90도로 꺾이더니 거짓말처럼 홀 속으로 사라졌다.
우승을 확정 지은 기적 같은 챔피언 버디 퍼트였다. 순간 J.J. 스펀(미국)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퍼터를 집어 던지는 ‘퍼터 플립’으로 우승 세리모니를 한 뒤 캐디와 진한 포옹을 했다. 그리고 18번 홀 그린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두 딸의 영접을 받았다.
한때 당뇨병으로 고생했던 스펀이 125번째 US오픈 챔피언(총상금 2150만 달러)에 등극했다. 그는 16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인근 오크몬트CC(파70)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2타를 잃었다.
최종합계 1언더파 281타를 기록한 스펀은 로버트 매킨타이어(스코틀랜드)의 추격을 2타 차이로 따돌리고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우승 상금은 430만달러(약 58억8000만원).
최종 라운드는 낙뢰를 동반한 갑작스런 폭우로 한 시간 이상 중단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들어간 스펀은 6번홀(3)까지 5타를 잃으며 우승 경쟁에서 밀린 듯했다.
불운까지 겹쳤다. 2번 홀(파4)에서 94야드 지점서 친 웨지샷이 깃대를 맞고 그린 밖 50야드 지점까지 굴러나가 보기를 범한 것.
하지만 경기가 중단됐다가 재개된 뒤 스펀은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후반 들어 12번(파5)에서 12m가량의 먼 거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데 이어 14번 홀(파4)에서 버디를 추가했다. 15번 홀(파4)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충분히 우승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은 됐다.
그리고 짧은 파4(314야드)인 17번 홀에서 1온에 성공해 버디를 잡아내면서 선두로 올라섰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파만 지켜내면 우승을 확정 짓는 상황에서 스펀은 22m 장거리 버디 퍼트를 욱여넣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오크몬트에서 나 홀로 언더파 우승자로 이름을 남겼다.

반면 스펀의 바로 뒤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펼친 샘 번스(미국)와 아담 스콧(호주)는 경기가 중단됐다 재개된 이후부터 급격한 샷 난조에 빠졌다. 번스는 8오버파, 스콧은 9오버파로 무너져 각각 공동 7위(최종합계 4오버파 284타)와 공동 12위(최종합계 6오버파 286타)에 그쳤다.
조부모가 필리핀계인 골프 마니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 골프채를 잡은 스펀은 독학으로 골프를 배웠다. 신장 173cm, 체중 84kg의 체격 조건인 스펀은 2017년에 PGA투어에 데뷔, 147번째로 출전한 2022년 발레로 텍사스 오픈에서 유일한 우승이 있었다.
올해 들어 지난 3월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통산 2승 기회를 잡았으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에게 연장전에서 패했다. 연장전 17번 홀(파3)에서 스펀이 티샷을 할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공이 페널티 구역에 빠지는 불운을 겪었기 때문이다.
스펀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도 비 때문에 경기가 중단됐다. 이후 코스가 확 달라졌는데 이에 적응하지 못해 연장전 승부를 펼쳤다”며 “오늘도 경기가 중단됐는데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더욱 집중해서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스펀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실패로 얻은 교훈은 통산 236번째 출전인 US오픈 우승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US오픈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로 기록될만한 명승부였다. 스펀은 “나의 한계를 생각하며 조금씩 더 발전하는 골퍼가 되도록 노력했다”고 우승 소감에서 밝혔다.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는 욘 람(스페인)과 함께 공동 8위, 매킬로이는 마지막 날 3타를 줄여 공동 19위(최종합계 7오버파 287타)로 대회를 마쳤다.
김주형(22·나이키)은 공동 33위(최종합계 9오버파 289타), 김시우(29)는 공동 4위(최종합계 12오버파 292타), 임성재(26·이상 CJ)는 공동 57위(최종합계 16오버파 296타)의 성적표를 받아 쥐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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