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북송과 세 번의 탈출. 탈북민 윤설미(40)씨의 삶을 설명하던 표현이었다. 태어나 한번 겪기도 힘든 실체적 고난을 여러 번 견뎌냈다. 그런 윤씨의 이름을 알린 건 고난이 아닌 웃음이다. 그는 자신의 일상을 개그로 풀며 범사의 감사를 일깨우는 콘텐츠로 인플루언서가 됐다. 열여덟 딸이 싫증 나 버리는 옷을 두고 하는 말, 스팀청소기로 전셋집을 밤낮으로 광내며 날린 촌철살인 등에 담긴 특유의 유머와 감사가 인기 이유다. 4만명에 달하는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댓글이 수십개씩 달린다.
경기도 시흥의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윤씨는 “북한에서의 힘든 과거를 이젠 잊으라는 분도 계시지만, 제게 그곳에서의 시간은 제게 축복이며 선물같다”며 “그 시간을 보석처럼 넣어놓았다가 힘들 때마다 꺼내본다”고 웃었다.
윤씨는 거의 매일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린다. 동갑인 남편 김세진씨와 집이나 차에서 찍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침부터 흥에 겨워 스팀청소기를 돌리는 아내에게 남편이 “어젯밤에도 했는데 오늘 또 하냐”고 타박한다. “전기세가 아까우냐”며 눈을 흘기자 남편은 “힘들까 봐 그런다”고 물러선다. 아내는 “방망이로 얼음장 깨고 손으로 걸레 빠는 것도 아니고, 서서 청소하니 얼마나 럭셔리하느냐. 새집 같지 않냐”고 되묻는다. 이에 남편이 “전셋집이 새집 같아 뭐하냐”고 투덜대자, 아내는 “이 세상에 내 집이 어딨느냐. 죽으면 다 놓고 간다. 지금 사는 집이 내 집”이라고 응수한다. 4월 초 올라온 영상은 97만회 넘게 재생되면 관심을 받았다.
너무 익숙해 잊고 있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런 영상엔 재미를 넘어 울림이 있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특히 삶이 고단한 이들이 힘을 얻었다는 반응이 많다.
“자폐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너무 힘들었는데 설미씨 덕분에 기운을 얻었다’는 감사 메시지를 보내신 적이 있어요. 그분 이야기를 듣는데 ‘나 같으면 못 버텼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마음을 담아 위로의 답변을 보냈어요. 지금은 제 팬이시죠.”
윤씨는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이 바로 나오는 것, 일년 내내 옥수수를 먹는 것에 여전히 감사해한다. 같은 탈북민으로부터 “아직도 그러냐”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감사를 오감을 동원해서 느낄 수 있다”고 고백했다.
윤씨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탈북민 50여명이 모이는 교회의 개척 멤버이기도 하다. 북한 교화소 수용 시절부터 기독교를 알았지만 제대로 된 신앙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2014년 한국에 왔을 때도 비슷했다. 신앙이 단단해진 건 2020년 결혼한 뒤부터다. 강연과 악단 공연을 하던 그는 현재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길거리 찬양에 적합한 전자악기 ‘헤세디언’도 개발했다.
“제 인생 스토리가 되게 어둡잖아요. 하지만 다른 문화를 살았던 것과 북한 사투리 덕에 많은 분들이 제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것이 참 감사해요. 저같은 게 뭐라고 말입니다. 저를 통해 잠자고 있던 감사를 사람들이 새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네요.”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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