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관세 전면전으로 폭주하고 있다. 세계 양대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보복 관세와 재보복 관세를 폭격처럼 주고받으며 경제 패권을 두고 자존심을 건 싸움에 나서는 양상이다.
트럼프는 9일(현지시간) 중국에 1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전날 미국의 104%의 관세에 대해 중국이 84%의 관세로 보복에 나서자, 곧바로 재보복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난 그들에게 ‘보복하면 관세를 두 배로 하겠다’고 말했고 그래서 중국에 그렇게 한 것이다. 중국이 보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국가들에는 협상을 위해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해줬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무역 전쟁은 잠시 멈추고, 중국과의 관세 전쟁에 전념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중국은 합의하고 싶어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뿐”이라며 “시진핑 주석은 자존심이 강한 남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과도 합의할 것이며 모든 국가와 합의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합의는 공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중국을 겨냥한 이번 조치가 “나쁜 행위자”를 상대하려는 시도라며 “그들이 확전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NN은 “수년간의 미·중 관계 악화로 워싱턴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힘에 대한 최고의 군사적 경제적 위협이라는 초당파적 신념이 강화됐다”면서도 “트럼프의 공격성은 그중에서도 유례없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트럼프는 관세 추가 인상에는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는 중국에 부과한 125% 이상으로 관세를 인상하는 것에 대해 “나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시 주석과의 회담에 대한 질문에도 “물론 그는 내 친구 중 한 명”이라며 “그를 만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 초강대국이 단기간 내에 협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대부분 국가가 협상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국은 거의 실시간으로 보복 관세를 발표하고 있어서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부과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트럼프에게도 중국과의 전면전은 쉽지 않은 싸움이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벌써 공화당 내에서는 ‘관세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도 여론을 의식해야 하지만, 트럼프처럼 선거를 치를 필요는 없다. CNN은 “진정한 권위주의 지도자인 시 주석은 트럼프와 달리 무역 전쟁이 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시 주석은 트럼프가 미국인에게 가하는 것보다 더 오랫동안 자신이 중국 국민에게 고통을 감내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관세 전쟁이 장기화하면 중국산 제품의 가격이 급상승해 미국 소비자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또 중국산 제품과 부품에 의존하는 미국 중소기업부터 휘청거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중국에 대한 관세가 급격히 인상되면서 중국 공장에 대한 미국의 주문이 취소되고 있다”며 “중국 제조업체들도 더 이상 미국 소비자를 위해 가격을 낮출 수 없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양국 간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중국이 마약 펜타닐 원료 공급처라며 지속해서 관세를 인상해왔다. 특히 J D 밴스 부통령이 지난 3일 폭스뉴스에 나와 “우리는 중국 촌놈들(Chinese peasants)에게 돈을 빌려 중국 촌놈들이 만든 물건을 산다”고 비난한 뒤 중국에서는 반발이 쏟아졌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7일 엑스에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영상을 올리며, 트럼프를 저격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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