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색의 신, 국보급 보컬, 4대 천왕 김나박이(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 가수 나얼(본명 유나얼)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그가 25년차 음악인이기 전에 미술인이었음을 아는 이들, 그 중에서도 갤러리를 찾아 작가 나얼로부터 그의 작품 세계를 마주해본 이들이라면 또 하나의 수식어를 마음에 그려 넣게 된다. 바로 ‘전도자’다.
나얼, ‘도슨트 전도자’로 작품 앞에 서다

“작품 ‘프래질(fragile, 손상되기 쉬운)’ 시리즈에 오브제로 사용되는 것들 대부분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대상이에요.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도 언제든 망가질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죠. 특히 사람들이 우상처럼 동경하는 유명인들도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신 최고의 예술가잖아요. 과거 흑인들이 인간답게 살려고 투쟁했던 것처럼 저는 창조주 하나님을 닮아가고자 음악, 미술을 통해 인간다움을 표현하는 창작을 끊임없이 해나갈 뿐이에요.”
갤러리 2층에 놓인 설치 미술 작품들은 복음을 더 직관적으로 꽃아 넣는다. 투명 수조 안에 놓인 주황색 문자 ‘SIN(죄)’을 빨간색 문자 ‘SON(아들)’이 가리고 있는 작품 ‘룩 앳 마이 선(Look at my son)’은 이사야 1장 18절을 오롯이 보여준다. 나얼은 “주홍 같은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붉은 피로 씻기게 됨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작품도 작가도 복음을 위한 수단”

이날 전시장엔 관람객들에게 무료 배포되는 모의고사 시험지가 놓여 있었다. 과목명은 ‘진리 탐구 영역’, 문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란 명제로 시작됐다. 소울 음악의 대부 레이 찰스(1930~2004)와 예수님에 대해 맞게 표현한 것을 모두 고르는 문제다.
나얼은 “레이 찰스 문제는 틀려도 인생에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에 담긴 복음을 주제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은 ‘은둔형 아티스트’로 알려진 것과 달리 생경한 광경이었다. 더불어 그의 이름 나얼에 담긴 ‘내 정신’이 곧 ‘내 신앙’과 직결돼 있음이 느껴졌다.

신, 국보, 천왕 등의 수식어와 결이 닮아서일까. 실제로 그의 팬들에게 나얼은 귀에는 가깝지만 눈과 손에는 먼 존재다. 그의 음악을 언제든 스트리밍 서비스로 들을 순 있지만 연예인에게 흔한 일상인 방송 출연이나 행사, 공연을 통한 무대 위 모습을 만나기도 어렵다. 그런 나얼이 가능한 많은 시간을 들여 갤러리를 찾아오는 이들을 직접 만나는 이유는 하나다.
“전시회를 열어온 지 25년이 훌쩍 넘었지만 갤러리에서 복음을 전한 건 2020년쯤부터예요. 놀랍게도 그동안 전시회를 찾아왔다가 난생 처음 교회에 다니게 됐다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팬카페에 신앙 고백을 하는 분들도 있고요. 이틀 전엔 한 30대 부부에게 작품 설명을 해드렸는데 ‘이렇게 성경 이야기를 들어보긴 처음’이라며 고마워하시기에 사는 곳을 물어보고 근처 교회를 소개해드렸더니 좋아하시면서 갤러리를 나섰어요. 놀라운 경험이었죠.”

작가로서 종교성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을까. 나얼은 특유의 미소를 띄며 말했다.
“고대의 미술, 르네상스 시대 전에는 성화가 곧 미술이었어요. 작품의 주제가 곧 하나님이고 성경이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시기가 있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죠. 그리고 제게는 ‘괜히 복음 전하겠다고 작품 만들었다가 손가락질 받으면 어떡하지’ ‘작품 못 팔아서 밥벌이가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없어요. 그런 자유로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죠(웃음).”
작업실=복음 품은 ‘나얼의 세계’가 창조되는 공간

서울 성북구에 자리 잡은 나얼의 작업실은 그의 미술적 음악적 영적 소울로 채워진 곳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0~80년대로 돌아간 듯한 소품들 사이로 그가 중학생 시절부터 모아온 1만여장의 보물 같은 LP 음반이 장식장을 채우고 있다. 정기적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음악 채널인 유튜브 ‘나얼의 음악 세계(나음세)’ 속 스튜디오이자 창의력을 발산하는 미술 작업 공간, 동시에 지인들과 말씀을 묵상하기도 하는 영적 아지트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교회가 셧다운됐을 땐 소그룹 모임 공간으로 쓰였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매주 한 차례 나얼이 직접 선곡한 8곡으로 채워지는 나음세의 주요 콘텐츠 ‘얼썸 믹스(Earlsome mix)’는 최근 200회를 넘어섰다. 그가 애정하는 시대별 음악 아카이브인 동시에 활발한 음반 활동하지 않는 나얼이 팬들과 음악으로 만날 수 있는 창구다.
1960~1990년대 소울 팝 음악들이 선곡표에 자주 등장하고 최근엔 양수경 원미연 장필순 등으로 이어지는 1990년대 한국 발라드 믹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나얼은 “CCM 믹스로 콘텐츠를 만든 적도 있다”며 “사실 영어를 잘 못하는데 흑인음악 중에 혹시 가사에 선정적인 내용이 전달될 지 몰라 신경을 쓰는 편”이라며 웃었다.

3년 전부턴 직접 파워포인트(PPT) 자료를 만들어 청년들, 예술계 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나얼은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세상을 살고 있다”면서 “소명의식을 갖고 생명을 살리는 소방관처럼 어떻게든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쓰임 받아야겠다는 생각 뿐”이라고 전했다.

브라운 아이즈, 브라운 아이드 소울로의 그룹 활동은 물론 솔로 가수로서도 셀 수 없이 많은 명곡들을 선보여온 만큼 그의 팬클럽, SNS 계정 댓글엔 나얼의 음악을 컴백 무대와 음반 발매로 기다리는 팬들의 바람이 적잖다. 특히 크리스천 팬들에겐 ‘스톤 오브 시온(Stone of Zion)’ ‘유 브와너(Yu Bwana)’와 같이 그의 신앙 고백이 담긴 앨범 속 히든 트랙에 대한 기대도 꾸준하다.
그는 앨범 작업에 대한 계획 대신 예술에 대한 가치를 들려줬다. “음악과 미술, 영역은 다르지만 본질은 동일해요. 중요한 것은 진리를 외치는 것이죠.” 김나박이, 음색의 신, 가수 나얼보다 ‘작가 나얼’ ‘유나얼 집사’로 불리는 게 더 편하다고 말하는 그의 고백이 100% 진심으로 느껴지는 답변이다.
노준(Noh Jun) 작가와의 11번째 2인전으로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는 전시회에선 나얼의 작품 2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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