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로회신학대(총장 김운용)가 총신대(총장 박성규)에 ‘1907~1959년 학적부’ 사본을 전달했다.
이로써 총신대는 비어있던 역사의 조각을 채울 수 있게 됐다. 관련 기사가 이어지면서 1901년 사뮤얼 마펫(마포 삼열) 선교사가 세운 평양신학교에 뿌리를 둔 두 신학대 중 장신대가 학적부를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학적부가 사라졌다
1945년 광복 이후 예수교장로회는 남산에 신학교를 세웠고 이 학교가 1959년까지 이어진다. 그해 장로회는 대분열을 하고 지금의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합동 총회가 태동한다. 남산에 있던 신학교도 둘로 나뉘어 통합은 서울 동대문에, 합동은 용산에 임시 교사를 마련했다.
교단 분열은 통합과 합동 모두에게 큰 혼란이었다. 남산신학교의 집기와 서류, 도서관 장서 등은 용산으로 옮겨졌다. 통합측에는 미국북·남장로교를 비롯한 각국 선교사가 함께 했다.
분열 초기 누구에게도 학적부가 없었다. 두 대학 모두 학적부를 찾기 시작했다.
행운은 통합이 거머쥐었다.
학적부를 둘러싼 비밀이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 건 박창환(1924~2020) 장신대 전 학장이 남긴 미공개 회고록에서였다. 여기에 학적부가 통합 총회로 오게 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일 국민일보 취재 결과 장신대에서 1948~1989년까지 강의했던 박 학장은 분열 후 학적부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일이며 학적부를 확보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회고록에 자세히 적어 뒀다. A4 120쪽 분량의 회고록에는 박 학장이 직접 보고 경험했던 한국교회 비사가 빼곡히 담겨 있다.
“학적부 제가 갖고 있습니다”
학적부와 관련한 핵심 인물은 남산신학교 직원으로 박 학장과 막역한 사이였던 김모 집사였다. 김 집사는 분열 후 합동 총회 신학교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김 집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반도호텔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김 집사는 나와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던 직원이었다. 그가 폐결핵으로 고생을 할 때 내가 치료를 위해 도움을 준 일도 있는 등 나와는 불가분리의 관계였다. 여러 사정으로 김 집사의 마음은 내가 있는 곳을 동경하면서 몸만 그쪽에 있는 상황이었다. 김 집사는 그곳을 떠나고 싶은데 학교 직원들에게 빚을 져 청산해야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던 모씨 선거 운동을 돕다가 그가 낙선하는 바람에 빚을 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갚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월급을 두 곳(신학교와 성서공회)에서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며칠 후 종로 화신백화점 뒤 ‘거상’(巨象)이라는 다방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꼭 필요한 금액이 17만원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김 집사가 ‘목사님. 제게 요구하시는 것이 없습니까. 사실 신학교 학적부가 제 집에 보관돼 있습니다. 그걸 드리겠습니다.’”
17만원은 1959년 쌀 한 가마니(80㎏) 가격이 1305원이던 걸 고려했을 때 지금 가치로 26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쌀의 가치가 지속해서 하락하면서 당시 체감 가치는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교단 분열에 이어 신학교마저 두 개로 나뉘다 보니 혼란은 극심했다. 학적부를 집에 보관했던 김 집사처럼 총회와 신학교의 각종 서류를 개인이 갖고 있던 일은 비일비재했다.
박 학장은 이를 즉시 학교에 보고했지만 처음엔 구매에 적극적이던 계일승 학장이 여러 곤란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발을 뺐다고 한다.
사재를 털어 확보한 학적부
“나는 화가 나 ‘단독으로라도 하겠습니다’라고 한 뒤 밤 중에 옆집 처형댁에서 17만원을 월 5부 이자로 꿨다. 김 집사는 돈을 받은 뒤 흰 쪽지 한 장을 내놓으면서 ‘물건이 서울역 화물보관소에 있다’고 했다. 보관소에서 학적부가 들어 있는 고리(行李)짝을 찾아 택시에 싣고 순화동 동서 댁에다 놓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학적부가 내 손에 들어왔다는 말을 전했다. 학교는 유구무언, 할 말이 없었다. 한 달 후 그 고리짝을 학교로 운반했다. 내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기에 제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해서 장로회신학교 학적부가 자기 고장으로 돌아왔다.“
박 학장이 확보한 학적부는 ‘1907~1951’, ‘1952~1959’ 등 두 권으로 각각 349쪽과 282쪽 분량이다. 이 안에는 2066명의 졸업생 명부가 빼곡히 담겨 있다. 학적부를 확보한 시기는 분열 이듬해인 1960년으로 추정된다.
임희국 장신대 명예교수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분열 후 혼란스럽던 시기에 어떤 학교도 갖고 있지 못하던 학적부를 우연한 기회로 확보한 건 학교로서는 큰 행운이었다”면서 “학적부는 한 집안의 족보와 같은 것으로 대학의 정통성을 세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인데 자칫 누구도 확보하지 못하고 소실될뻔 했었다”고 말했다.
박용규 총신대 명예교수도 “두 대학의 학적부 사본 공유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고 앞으로도 두 대학이 더욱 활발한 교류를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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