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이 주도한 가자지구 3단계 휴전안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도 일단 유엔 안보리 결정을 환영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구상에 힘을 실어줬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하마스와 직접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유엔 안보리는 10일(현지시간) 긴급회의를 열고 “3단계 휴전안을 지지하는 결의안 표결에서 15개 이사국 중 14개국이 찬성했다”고 밝혔다.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찬성표를 던졌고, 러시아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긴급 회견을 열고 단계적 휴전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6주간의 완전한 휴전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내 인구 밀집 지역 철수와 여성·노약·부상자 등을 포함한 일부 인질 교환을 1단계로 제시했다. 이후 ‘모든 생존 인질 교환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철수 등 영구적 적대행위 중단’, ‘가자지구 재건 시작과 사망한 인질 시신 송환’으로 이어지는 3단계로 구성됐다.
미국은 전날 유엔 안보리에 이 같은 단계적 휴전안을 지지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했다. 결의안에는 “이스라엘이 받아들인 새로운 제안을 환영하며 하마스도 이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 양측 모두 지체하지 않고 조건 없이 협상 내용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1단계 협상 과정이 6주 이상 걸리면 협상을 하는 동안 휴전이 계속된다는 조항도 포함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결의 채택 후 발언에서 “안보리는 하마스에 휴전 협상안을 받아들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며 “이스라엘은 이미 찬성했고, 하마스가 찬성한다면 싸움은 오늘이라도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도 안보리 표결 후 성명을 통해 “결의에 포함된 내용을 환영한다”며 “원칙의 이행과 관련한 간접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중재자들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음을 재확인하고 싶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쟁에 대한 미국 지원과 이스라엘의 비타협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거둔 이례적인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번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동시에 압박하려는 목적이 담겼다.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가통합당 대표가 전시 각료를 사임하면서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고, 휴전을 반대하는 연정 내 극우파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카이로 기자회견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분명히 말하는데 이스라엘은 이 제안을 수용했다”며 “역내외 국가와 이스라엘은 이를 수용했고, 이를 수용하지 않은 유일한 당사자는 하마스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하마스와 인질 석방을 위한 직접 협상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NBC방송은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 휴전 회담이 실패할 경우 가자지구에 인질로 잡혀 있는 미국인 5명을 석방하기 위해 하마스와 직접 협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4명의 전·현직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한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휴전안 논의에 진전이 없으면 바이든 정부가 하마스와 직접 협상을 시도하는 방안이 매우 현실적인 옵션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직접 협상 구상은 대선 전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자구책 성격이 있지만,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도 3단계 휴전안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장기적인 평화, 안보,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전쟁 이후를 계획하기 위한 지속적인 외교적 노력에 관해 설명했다”고 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