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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70대 목사가 소중한 사람들 모아 임종예배 드린 까닭은

입력 : 2023-06-20 14:37/수정 : 2023-06-21 11:20
정성학 목사(오른쪽 끝)가 19일 천안 그레이스세븐에서 열린 자신의 생전 임종예배를 찾은 하객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가면 가족도 부모도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딱 한번은 아빠를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서 아빠를 만나 나도 예배자로 잘살아왔노라 자랑스럽게 당신의 얼굴을 마주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때 잘했다 칭찬 한 번 해주세요.”

아버지의 임종예배에서 딸이 전하는 추모사에 참석자들은 연신 눈물을 흘렸다.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여느 장례식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지만 임종 당사자가 멀쩡히 살아 있다는 점이 이날 예배의 특징이었다.

제주 기적의교회(김성빈 목사)를 시무하다 올해 초 은퇴한 정성학(71·21세기성경연구원 원장) 목사가 19일 충남 천안시 그레이스세븐 갤러리(원장 정마리아 전도사)에서 ‘생전 임종예배’를 열었다. 사전에 초청받은 이들만 참석했음에도 200여 석이 가득 찼다. ‘밝은 옷을 입고 와 달라’는 주최 측의 요청 때문인지 참석자 대부분이 검은 정장 대신 캐쥬얼한 복장이었다.

예배 시작 2시간 전부터 참석자들이 모여들었다. 정 목사는 모든 이들과 사진을 촬영하며 눈을 맞추고 덕담을 나눴다. 30도가 넘는 날씨 탓에 정 목사의 하얀 삼배 옷이 땀으로 젖었지만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유기성(선한목자교회 원로) 목사가 정성학 목사 생전 임종예배에서 '나도 죽은 십자가'를 제목으로 설교를 전하고 있다.

예배에서는 유기성(선한목자교회 원로)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유 목사는 “생전 임종예배를 오해하는 사람도 있고 지나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며 “정 목사님의 의중은 나는 죽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믿음을 명확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크리스천들이 세례를 받을 때 하는 ‘이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결심을 청중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사도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라고 했다. 이 고백은 죄의 종노릇 하는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오늘과 같은 생전 임종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뿐이지 모두 생전 임종예배를 드린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지인과 가족들의 추모사와 회고담에서는 감사와 용서의 말들이 오갔다. 정 목사의 딸 정브니엘(기적의교회) 집사는 “오늘이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넬 수 있는 날이라면 굳이 미웠던 날 상처가 됐던 날들에 대한 말들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며 “오늘은 그동안 미안했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고 추모사를 전했다.

생전 임종예배를 앞두고 정성학 목사가 행사장 입구에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정 목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자신의 SNS를 통해 생존 임종예배에 대한 생각을 나눠 왔다. 이번 예배는 그간의 말을 행동으로 실천한 자리다. 정 목사는 “고인에게 수의를 입히고 절을 하고 향을 피우는 행위는 모두 고인을 숭배하는 전통적인 유교 예절에 속한 것”이라며 “생전 임종예배는 임종을 맞는 살아 있는 당사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축복하는 성경적이자 신앙적인 접근”이라고 소개했다.

정 목사는 “태어나는 것은 순간이고 사는 것은 잠시지만 죽음 이후는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며 “그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생전 임종예배”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이가 80이든 90이든 혹은 100수를 하든 험한 세월을 살아오느라 외로움에 부대끼며 상처받고 지친 임종을 보며 그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덕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정 목사는 “오늘 예배에 대해 ‘말이 씨가 된다’고 ‘진짜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도 들었지만 예배를 치르고 나니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다“며 “오늘이라도 주님이 부르신다면 행복한 마음으로 주님 곁으로 갈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향후에 생전 임종예배가 확산하면 적당한 연령대나 형식에 대해 교단이나 교회 혹은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국에서 온 200여명의 하객들이 정성학 목사의 생전 임종예배에 참석했다.

한편 예배에서는 유언장 낭독과 연명치료 포기각서 및 장기기증 서약서 작성의 순서가 이어졌다. 제주와 부산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지인들은 순서마다 박수로 호응했다. 경기도 양주에서 온 문병하(덕정감리교회) 목사는 “생전 임종예배라는 개념이 생소해서 어떤 마음으로 와야 하는지 복잡했는데 막상 예배에 참여해 보니 분위기가 활기차고 감동이 있었다”며 “단순한 퍼포먼스로 끝나지 않고 의미 있는 운동으로 퍼져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천안=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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