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때 자식을 잃은 미국인 부친이 30일(현지시간) 견딜 수 없는 슬픔을 토로했다.
스티브 블레시(62)는 아들 스티븐(20)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 “수억 번을 한꺼번에 찔린 것 같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며 “아무 감각 없이 망연자실하고,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블레시는 전날 아내와 쇼핑하던 중 동생으로부터 “한국 상황에 대해 들었느냐”는 전화를 받았고, 이후 아들과 친구, 정부에 연락을 돌리다 주한미국대사관으로부터 사망 소식을 통보받았다.
조지아주 케네소주립대에 다니던 스티븐은 지난 8월 한양대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간 미뤄왔던 일이었다. 부친은 국제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은 아들이 동아시아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블레시는 “내 아내는 라틴계지만 아들은 라틴아메리카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며 “스티븐은 스페인어뿐 아니라 한국어를 정말로 배웠다. 엄마보다 더 많은 언어를 할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은 중간고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핼러윈 축제에 가게 됐다고 한다. 친구 중 몇 명은 인파를 피해 미리 빠져나갔으나 아들은 그러지 못했다고 블레시는 설명했다. 그는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 30분 전쯤 아들에게 ‘밖에서 돌아다니는 걸 안다. 안전하게 다녀라’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국인 희생자는 켄터키대 간호학과 3학년생인 앤 기스케(20)로 나타났다. 그 역시 한양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았다. 켄터키 대학은 이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라며 성명을 내고 그의 사망을 확인했다. 기스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틀 전 서울에서 20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와 함께 한국에 온 다른 2명의 학생과 교직원은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서울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 가운데 적어도 2명이 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며 “이 슬픔의 시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며, 부상한 모든 사람의 회복을 위해 계속 기도한다”고 적었다.
외신은 참사 이틀째에도 이번 사고를 주요 뉴스로 전했다. 특히 정부의 군중 통제 실패 등을 자세히 언급하며 참사 원인을 조명했다.
NYT는 “최악의 평시 재난 중 하나인 이번 비극과 군중을 관리할 당국의 책임에 대한 의문은 만성적으로 인재에 취약한 한국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소리(VOA)도 “소규모일지라도 시위 때는 대규모 경찰이 동원됐다”며 “대규모 군중 통제의 부재가 두드러졌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를 인용해 “행사 주최자가 없더라도 이번처럼 많은 인원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관계기관의 선제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국이 많은 사람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이 이태원에 예상보다 많은 숫자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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