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키우면 처음으로 아이가 ‘엄마’라고 했던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죠. 그런데 엄마를 부르려면 2만번의 학습이 필요한 거래요. 뱃속에서부터 ‘엄마가 널 사랑해, 네가 태어나면 엄마가 정말 예뻐해줄게’ 이런 말을 2만번 들어야 엄마라는 한 마디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난청인 아이들이 수술 후에 엄마라고 말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대요.”
김형규(47)씨는 청각장애인에게 소리를 선물하는 밴드 ‘이층버스’의 리더다. 공연 수익금으로 인공와우(달팽이관) 수술을 후원한다. 그가 보여준 핸드폰에는 지난해 7월 수술했던 네 살 민우(가명)가 드디어 ‘엄마’라는 첫말이 트였다며 민우 엄마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민우는 이제 열심히 엄마엄마 하며 따라다닌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반바지를 입은 귀여운 꼬마가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저도 아빠니까 민우 부모님한테 감정 이입이 돼서 정말 뭉클했어요. 감격스럽고 기뻐서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이다, 더 힘내자 다짐했죠.”
그런데 그가 ‘지금까지 한 일’을 소개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그의 본업은 걸그룹 마마무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RBW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이자 이사이다. 창립 멤버였던 큐브엔터테인먼트 시절부터 연습생을 발굴하고 트레이닝하는 신인개발팀을 맡아 마마무는 물론 포미닛 비스트 에이핑크 비투비 펜타곤 (여자)아이들 등 쟁쟁한 아이돌 12팀이 그의 손을 거쳐 데뷔했다. 초등학생일 때 만나 가르친 가수들도 있으니, 문자 그대로 스타들을 키운 셈이다.

그는 1994년 강변가요제로 출발해 그룹 쿨 신화 빅마마 등의 노래를 만든 작곡가로 이름을 알렸다. 또 가수 더원의 편곡자이자 프로듀서로 그를 MBC ‘나는 가수다2’의 가왕으로 만들고 KBS2 ‘불후의 명곡’에서 수차례 우승하게 한 실력자다. 이렇듯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성공적으로 이력을 쌓으며 음악을 만들어온 그가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이들을 만나고 돕게 된 것은 예비 스타들을 육성하는 과정 중에 자연스레 이뤄진 일이라고 했다.
-10여년 전부터 연습생들을 이끌고 서울시 어린이병원과 복지관들을 찾아다녔다고요.
“제가 20대부터 모던K라는 실용음악 아카데미를 운영했기 때문에 연습생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커리큘럼은 문제없었는데,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중심이 꽉 잡혀 있는 아이들에 비해 음악만 열심히 해서 갑자기 성공하는 아이들은 인기가 높아질수록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요즘처럼 학교폭력을 비롯해 인성 논란에 휘말리는 스타들이 종종 나오는 시절도 아니었고, 소속 가수가 사건 사고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는데 그의 주도로 비투비와 에이핑크는 보육원 아이들과 생일 파티를 하면서 어울려 놀아주고, 펜타곤과 (여자)아이들은 정기적으로 발달장애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쉼터를 찾아간 밴드 원위(ONEWE)는 할머니들을 위한 헌정곡을 쓰기도 했다.
-마마무는 연습생 시절 꼬박꼬박 독후감을 썼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이사님 아이디어였나요.
“대중과 만나고 소통하려면 지식과 소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연습에만 몰입할 게 아니라 책도 읽어야 한다고요.”

-봉사를 다녀오면 연습생들 반응은 어떤가요.
“처음에는 놀라죠. 만남이 반복되면서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대중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조금씩 깨닫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잘 성장해서 훨씬 더 큰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원위의 강현이는 첫 저작권료 수입을 기부했고 펜타곤의 후이도 후원을 하고 싶다고 해서 제가 연결해줬어요.”
-그러면서 이사님도 변화하게 되셨다고요.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고, 그들 중 70% 정도가 중증 장애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출생신고가 안 돼서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못하고 침대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친구도 있다는 것도요. 그런데 중증 장애인 병동 간호사님들이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이 저희 공연을 보고 조금씩 반응한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이 친구들이 음악을 통해 한 번이라도 더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봉사하면서 철이 든 거죠.”
-청각장애인과는 어떻게 연결이 된 건가요.
“삼성소리샘복지관이라는 곳에 초대돼 공연을 하게 됐어요. 거기서 인공와우 수술이라는 게 있고 성공 확률도 높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희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통해서 수술비가 없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굉장히 감사한 일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예 봉사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밴드를 만드신 거죠.
“어린이병원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아티스트들한테 불가피한 스케줄이 생긴 거예요. 아이들은 기다리는데 못 가는 상황이 된 거죠.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다닐 수 있는 정규 멤버가 필요하다 싶었어요. 실력도 있고 응해주실 것 같은 분들에게 한 명 한 명씩 취지를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해서 2017년 탄생한 밴드가 이층버스다. 그가 리더이자 신디사이저를 맡고 이선호(보컬) 제니윤(바이올린) 이상인(건반) 박성룡(드럼) 박동혁(베이스) 연태희(기타)로 구성됐다. 2018년 ‘동화처럼’이라는 곡으로 데뷔했고 그동안 10여곡을 발표했다. 첫 공연에 그의 20년지기인 쿨의 메인보컬 이재훈과 가수 양파가 함께한 것을 시작으로 서은광(그룹 비투비) 마마무 펜타곤 신연아(빅마마) 더원 등 여러 스타가 4개월마다 여는 이층버스의 정기공연에 참여했다.

-지금까지 몇 명이 소리를 듣게 됐나요.
“10명 수술을 도왔어요. 삼성소리샘복지관과 한국난청인교육협회에서 수술이 시급하고 형편이 어려운 고도 난청 친구들을 추천받아요. 3세부터 27세까지, 남매도 있었습니다. 수술한 지 오래되면 기기 교체가 필요하다고 해서 모던K에서 따로 1000만원을 기부해 2명을 도왔고요.”
-수술이 끝나면 어떻게 되나요.
“인공와우 수술 후에는 소리를 인식할 수 있도록 매핑이라는 재활 단계를 거쳐야 해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거잖아요. 이게 엄마 목소리야, 이게 새소리고 이게 파도 소리야, 이렇게 반복 학습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아, 그 친구들은 엄마 목소리도 처음 듣는 거네요.
“그렇죠. 첫 번째 수술한 하은(가명)이는 어머니가 농인이세요. 수술 후에는 주변에서 계속 말을 들려줘야 하는데 어머니가 말씀을 못 하시니까 나중에 수술받은 아이들보다 재활이 느려요. 안 그래도 첫 자식처럼 애틋한데 그래서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저희 가족과 여행도 다녀오고요.”
여덟 살 때 수술해 이제 열두 살이 된 하은이는 조금씩 말을 하고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그는 하은이와 공연에서 합주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일찌감치 젓가락 행진곡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해놓았다고 했다.
-하은이와 여행을 같이 간다는 건 가족 모두 이사님을 지지한다는 뜻이겠네요.
“가장 든든한 후원자죠. 이층버스 한 대를 만드는데 2000개의 부품이 필요하대요. 저희도 그래요. 이층버스 멤버 일곱 명 말고도 영상 찍어주시는 감독님, 편곡자들처럼 동참하는 분들이 많아요. 무엇보다 70분 정도 개인 후원자들이 계세요. 굉장히 큰 힘이죠. 신연아씨는 공연 후에 어머니와 후원자가 되셨어요. 같이 공연한 가수 팬들이 도와주시기도 해요. 더원 팬 중에 무기명으로 100만원을 기부하신 분도 있고요. 그래서 외롭지 않아요.”

-수술을 하고도 잘 못 듣는 아이는 없었던 거죠.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부분이 있어요. 농인의 삶은 어떻게 보면 불편하지만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듣기 위한 수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거죠. 원래 열 번째 수술 순서였던 중학교 아이가 수술을 취소했어요. 수술이 두려워진 거예요. 다들 빨리 소리를 듣고 싶어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수술하고 싶은데 경제적인 이유로 못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했어요.”
-100명 수술이 목표라고요. 1인당 수술비가 1000만원 정도라고 들었는데, 적지 않은 금액인데요.
“100명을 목표로 삼았던 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평생 죽기 전까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어서예요. 수술비는 450만~1000만원이어서 평균 700만원 정도예요. 수술만 지원하느냐 재활까지 돕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죠.”
김 이사는 얼마 전 처음으로 동요를 작곡했다. ‘들려 들려 작은 소리가 들려요/ 들려 들려 행복한 소리 들려요/ 내 귓가에 맴도는 소리 함께 느낄 수가 있어요/ 까륵 까르르 웃음소리도 이제 들을 수 있죠’라는 가사의 ‘들려’라는 곡으로, 다음 정기 공연에서 한국난청인교육협회 학생들이 부를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국민희망대표 20인으로 선정돼 참석하셨잖아요.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망설였어요. 제가 다니는 교회나 제 주변에 정말 남모르게 봉사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내가 자격이 있을까, 내가 나서도 될까 염려됐어요.”
-자칫 맡고 있는 아이돌에게 정치색 논란이 생길까 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겠어요.
“맞아요. 후원자분들 때문에도 그런 우려가 됐었죠. 그런데 이층버스 멤버들이 어떤 정권이든 취임식에 초대된 건 감사한 일이고 꼭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어요. 마침 취임식이 열리는 그 시간에 열 번째 수술이 이뤄졌어요.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무지개가 떴잖아요. 뭔가 저에게 주는 토닥임 같은 느낌이어서 더 벅찬 날이었어요.”

-취임식 후에 용산 대통령실에도 초대되셨고요.
“그날 각자의 사연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저는 콘서트에 대통령님은 못 모실 것 같고, 희망대표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대통령님이 나도 함께 초대해달라고 하시면서 희망대표들이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주시더라고요.”
-‘기념품 1호’ 손목시계도 받으셨죠.
“시계는 이층버스 멤버들이 한 달씩 돌아가면서 갖기로 했어요. 부모님들이 정말 좋아하시니까 효도하려고요. 희망대표라는 이름이 너무 크다 싶었는데 저희 멤버와 후원자분들에겐 격려와 위로가 됐어요.”
-이층버스가 더 많이 알려지면 더 빨리 100명을 채울 수 있겠네요.
“안 그래도 이재훈씨가 며칠 전에 다음 공연에 함께하겠다고 전화를 했어요. 자기가 목표 달성을 앞당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지인들을 데리고 오겠대요. 300명까지 목표를 늘리라고 하는데, 저는 일단 100명부터 해내고 보자는 생각이에요(웃음).”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세요.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엔터업계도 어렵고 미래도 불투명했어요. 작게라도 이층버스 공연을 계속했지만 한 번 중단되기도 했고요. 약속은 꼭 지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저희가 이층버스니까 자동차 관련 기업을 찾아가 도움을 청할까 생각도 해봤어요.”
-왜 안 하셨어요.
“순리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자연스럽고 차근차근한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야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으니까요. 저한테는 취임식 초대도 차근차근은 아니었던 거죠. 너무 엄청난 게 다가온 거라서요.”

-스타들이 공연 초대에 응한다는 게 또 감사한 일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제 인맥이 거의 바닥나고 있어요(웃음). 어떤 분이 우스갯소리로 팬덤이 아주 큰 스타가 나서면 100명 수술도 금세 가능하지 않겠냐고 했어요. 영향력이 큰 분들이 움직여주면 수술도 수술이지만 청각장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태어나는 아기 500명 중 1명이 난청이래요. 그렇게 많은 줄 모르셨죠?”
김형규 이사와 이층버스는 다음 달 15일 서울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장애인 관객을 위한 공연을 하고, 8월 11일 건국대 공연장에서 11번째 난청 아동을 돕기 위한 정기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재훈과 보이그룹 원어스(ONEUS)가 함께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그는 언젠가 100명의 수술이 성공하면 100명 모두를 초대해 이층버스와 같이 콘서트를 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무대 위에 선 이들에게도, 무대 아래의 가족과 후원자들에게도 그만큼 완벽한 피날레는 없을 것이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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