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닝 붐이 대단하다. 요즘 한강이나 공원에 나가보면 모두 달리고 있나 싶을 정도로 달리는 사람이 많다. 러닝을 시작한 지 5년쯤 됐는데 러닝과 독서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3㎞를 달리기도 힘들다. 10㎞를 달리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시작했지만 무슨 특별한 방법이 없다. 꾸준히 달리면서 조금씩 거리를 늘려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5㎞를 안 쉬고 달릴 수 있고, 10㎞를 뛰는 사람이 된다. 러닝을 하면서 폐와 심장, 근육이 서서히 강화된다. 그리고 달리기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점점 더 멀리 달리게 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책 한 권을 다 읽기가 어렵다. 자꾸 멈추게 되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어느새 졸음이 쏟아진다. 책은 술술 읽히는 게 아니다. 특히 좋은 책은 더 그렇다. 3㎞도 못 뛰던 사람이 10㎞를 뛰게 될 때까지 오랜 연습이 있었다. 독서도 꾸준히 읽으며 읽는 힘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수밖에 없다.
러닝처럼 독서에는 분명히 효용성이 있다. 프랑스의 문학 교수이자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인 앙투안 콩파뇽이 쓴 ‘문학의 쓸모’는 “우리가 독서에 투자해서 어떤 수익, 어떤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며 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는 문학적 소양과 책을 자주 접함으로써 습득하는 감각을 ‘제5의 감각’이라고 칭하면서 그 감각이 개인의 생활과 일에서 수행하는 긍정적 역할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그것 덕분에 우리는 거리를, 도시를, 삶을, 좀 더 초연하게 건너갈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글을 아는 사람은 덜 자기애적이고, 더 거리를 두는 편이고, 좀 더 비딱하고, 자기 자신에게 덜 속고, 자기기만이 덜한 편이다.”
그런데 독서와 문학에는 한 가지 결정적 난관이 있는데 그 효용성이 곧바로, 또는 가시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학과 독서를 통한 제5의 감각은 단기간에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속도 문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문학과 독서는 그토록 인기 없는 일이 된 것이다. 저자는 “신기술로 획득한 속도에 비해 너무나 느린 문학 독서, 근접 독서의 그 느림이 이제는 참을 수 없는 것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속도가 빨라졌고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독서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과연 그렇다. 책이 발명된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책을 빨리 읽을 방법은 여전히 없고, 독서로 빠르게 수익성을 올릴 방법도 여전히 없다. 독서를 해서 돈을 벌 방법이 새로 생겨난 것도 아니다. 독서의 속도와 생산성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저자는 독서는 느리게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장기 투자에 비유한다. “문학과 독서, 둘의 응집체인 문학적 소양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늘 보상을 안겨준다. 그것은 이득을 늦게 보는, 하지만 아주 큰 이득을 보게 해주는 투자다.”
이 점에서도 책읽기와 달리기는 비슷하다. 달리기를 빠르게 해낼 비법 같은 건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열심히 러닝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얻는 이익도 없다. 책읽기처럼 달리기의 효용성은 분명하지만 느리게 실현된다.
어떤 것은 천천히 나아진다는 것, 빠르게 얻을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 단기적인 성과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기다릴 줄 아는 것, 러닝과 독서는 이 미친 듯한 속도의 시대에 저항하며 느림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한다.
김남중 편집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